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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와 고려시대 인물김양감 (金良鑑)

분류 : 신라와 고려시대 인물

간략설명 : 김양감 (金良鑑) 1) 출생과 사망 연대 고려 문종(文宗)과 선종(宣宗)때의 사람이다. 광양에서 김책(金策)의 아 들로 태어났으며, 출생과 사망 연대가 밝혀지지 않았다. 2) 벼슬과 공(功) 1070년(문종24) 정월(正月)에 정3품인‘상서우승 좌간의대부(尙書右 丞 左諫議大夫)’가 되고 7월에는‘서북병마부사’(西北兵馬副使)가 되었 다. 1074년 8월에 태

김양감 (金良鑑)

1) 출생과 사망 연대

고려 문종(文宗)과 선종(宣宗)때의 사람이다. 광양에서 김책(金策)의 아 들로 태어났으며, 출생과 사망 연대가 밝혀지지 않았다.

2) 벼슬과 공(功)

1070년(문종24) 정월(正月)에 정3품인‘상서우승 좌간의대부(尙書右 丞 左諫議大夫)’가 되고 7월에는‘서북병마부사’(西北兵馬副使)가 되었 다. 1074년 8월에 태복경(太僕卿)으로 노단(盧旦. 中書舍人)과 함께 송 (宋)나라에 사은사(謝恩使. 나라에 베푼 은혜에 감사한다는 뜻으로 외국에 보내던 사신) 로 가서 요(遙)나라와의 이목(耳目)을 피하기 위하여 종전의 등주(登州)를 거치던 항로(航路)를 절강성(浙江省)의 명주(明州)로 변경 하는데 합의하고 귀국하였다.
같은해 12월에 정3품인‘좌우산기상시(左右散騎常侍)’가 되고 1076년 11월에 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를 제수받았다. 이어 호부상서∙참지 정사∙판상서병부사(判尙書兵符事)∙권판중추원사(權判中樞院事)를 거 쳐 1082년에는 정2품 좌복사(左僕射) 에 올랐다. 6대 선종(宣宗)이 즉위 (1083년)하자 바로 차관(次官)급인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가 되었으며 그 해 12월에‘문하시랑평장사’이던 이정공(李睛恭)과 함께 왕 앞에 나아가 시정(時政)의 득실(得失)을 아뢰었다.
1086년 4월(선종3년)에‘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가 되었고 그해 3월에 왕앞에 나아가 다시 시정(時政)의 득실(得失)을 아뢰었다. 5월 에‘판상서호부사(判尙書戶部事)’가 되었으며, 이어 11월에‘수태위(守太 尉)’가 되었다. 1090년(선종7년) 4월에‘문하시랑’으로서 간의대부 손관 (孫冠)과 함께 과거 시험관인‘지공거(知貢擧)’가 되어 진사(進士) 이경필 (李景泌) 등을 뽑았는데 그 답안이 격식에 맞지 않다는 비난을 받았다. 마 지막에는 국무총리 자리인 시중(侍中)의 지위까지 올랐다. 그의 인품은 당시 세도가인 이자겸(李資謙)이 누이의 아들인데도 끝까지 그에게 아부하지 않고 정의로운 길을 걸었다. 그의 아들로는 약온(若溫)과 의원(義元)이 있다.
※ 참고문헌
1.『 고려사』
2. 羅恪淳『. 고려사절요』
3. 태성규『. 신동국여지승람』
4.『 대동야승』
5. 朴玉杰『. 동사강목』
6.『 태조실록』
7.『 한국철학연구』. 한국철학연구회.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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