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물유적

관방유적봉수

분류 : 관방유적

간략설명 : 봉수 1) 건대산(구봉화산) 봉수대 건대산 봉수(件臺山烽燧)에 관한 기록은『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 輿地勝覽)』이나『여지도서(輿地圖書)』를 비롯한 조선시대 지지류에“건대 산 봉수는 현의 동쪽 18리에 있으며 남쪽으로 순천부 진례산에 응하고 서 쪽으로 순천부 성황당산(城隍堂山)에 응한다”라고 되어 있다. 광양 내에서 이와 관련하여 생각할 수 있는 지명은 2곳

1. 건대산(구봉화산) 봉수대


건대산 봉수(件臺山烽燧)에 관한 기록은『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 輿地勝覽)』이나『여지도서(輿地圖書)』를 비롯한 조선시대 지지류에“건대 산 봉수는 현의 동쪽 18리에 있으며 남쪽으로 순천부 진례산에 응하고 서 쪽으로 순천부 성황당산(城隍堂山)에 응한다”라고 되어 있다. 광양 내에서 이와 관련하여 생각할 수 있는 지명은 2곳이 있는데 하나는 구 동광양시와 광양읍의 경계지점인 구봉화산(舊烽火山)이고, 다른 하나는 구봉화산 서 쪽에 위치하고 있는 봉화산이다. 이들 지명과 관련하여 주민들 사이에서는 봉수대가 처음에 구봉화산에 있다가 후에 봉화산으로 옮겼다고 하여‘구봉 화산’,‘ 신봉화산’으로 부르고 있다. 그러나 봉화산에는 봉수대와 관련한 유구의 흔적이 남아 있지 않고 구봉화산 정상부에만 봉수대 흔적이 남아 있다. 이곳은 광양만 일대가 바로 내려다보이기 때문에 봉화를 이용하여 광 양만의 상황을 순천과 여수를 비롯한 주변에 바로 전해줄 수 있는 중요한 지점이다.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 구봉화산 봉수가 기록에 남아 있는 건대산 봉수로 판단된다.
이 봉수대는 골약동과 광양읍의 경계지점에 해당하는 해발 472.7m의 구 봉화산(舊烽火山) 정상에 있다. 이 산에 오르는 길은 크게 3갈래 길이 있 다. 즉 황금동 황곡마을에서 오르는 길과 황길동 통사마을에서 오르는 길, 황곡마을에서 배나무재를 거쳐 정상으로 오르는 길이 있는데 3갈래 길 모 두 경사가 급하고 거리가 멀어 오르기가 쉽지 않다. 3길 가운데 황금동 황 곡마을에서 오르는 길이 등산로가 나 있어 오르기에 쉬운 편이다.
구봉화산의 정상부에 오르면 서쪽 1.6㎞ 지점에 봉화산(신봉화산)이, 남서쪽 8㎞ 지점에 순천 검단산성과 왜성이 위치하고 있고, 남쪽으로는 광양 제철소가 자리잡은 광양만이 한 눈에 들어온다. 북동쪽 13.4㎞ 지점에는 마로산성이 보이고, 북서쪽으로는 광양읍이 바로 내려다보이기 때문에 광 양만의 상황을 잘 조망할 수 있으며 아울러 주변지역에 전할 수 있는 중요 한 위치에 해당한다.

 구봉화산은 4면이 비교적 가파른 편이나 정상은 대체로 평평하게 다듬어져 있다. 30~70㎝ 크기의 할석을 이용하여 쌓아 올 린 봉수대는 현재 높이 120㎝, 남-북 800 ㎝, 동-서 700㎝ 크기로 남아 있는데 평면 형태는 원형에 가깝다. 그런데 이 석축단도 골약 동민들이‘구봉산’이라는 안내석을 세우면서 흩어져 있던 할석들을 이용하여 다시 쌓은 것으로 원래의 봉수대 구조는 그 기저부만 있을 뿐 대부분 유실된 상태이다. 다만 할석들이 남-북 15.2m, 동-서 15.5m 정도의 범위까지 일정하게 흩 어져 있어 원래는 상당히 높게 쌓아졌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을 뿐이다. 봉 수의 남쪽에‘학생김해허공만용지묘-일구구칠년 사월 오일 립(學生金海 許公萬鎔之墓-一九九七年四月五日立)’이라는 명문의 비가 세워진 민 묘 1기가 있다. 그리고『호남봉대장졸총록(湖南烽臺將卒總錄)』에 의하면 ‘건대산 봉수대의 규모는 별장(別將) 13인, 군 21명, 보인(保人) 42명으로 구성되었으며 매삭(每朔)마다 윤번으로 근무하였다’고 기록하여 봉수군 주둔 사실을 알려 주고 있다.
남아 있는 건대산 봉수의 기록으로 보아 이 봉수대의 주된 기능은 돌산도 의 봉수와 진례산 봉수에서 전달된 적변(賊變)의 상황과 광양 지역의 위급 한 상황을 바로 순천도호부에 알려주는 것이었다. 조선초기 한때 진주목 (晋州牧)으로도 이 지방의 상황을 전하기도 하였으나 조선후기에는 이러 한 기록이 없는 점으로 보아 제2거의 간봉역할은 없어지고 제5거의 간봉역 할만 담당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2. 봉화산 봉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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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봉수대가 있는 산을 현지 주민들은‘신봉화산’이라 부르고 있으며, 유적은 광양읍 초남리 봉화산의 정상에 위치 하고 있다.
봉화산의 정상부(해발 397.7m)에 오르면 동쪽으로 배나무재 너머의 해발 472.7m의 구봉화산이 보이고, 서쪽으로 세풍간척지와 멀리 순천 검단산성이 보이고 있다. 남쪽으 로 광양만이 넓게 펼쳐져 있고, 북쪽으로 남 해고속도로가 보이고 있다.
봉화산으로 오르는 길은 크게 두 갈래 길 이 있다. 하나는 사곡리 점동마을에서 황금 동쪽으로 계곡을 따라 작은 소로가 있는데, 이 소로를 따라 오르다가 봉화산으로 연결되는 경사가 심한 방화도로가 나 오고 이를 따라 약 40분 정도 가면 봉화산 정상에 도달할 수 있다. 다른 하 나는 황금동 황금저수지에서 봉화산으로 오르는 길로 이 길은 거리가 멀기 는 하지만 점동마을에서 오르는 길에 비하면 매우 완만하다. 봉화산의 정상부에는 14.3×13m 크기의 비교적 평탄한 지형이 있으며 서쪽으로 약 4m가량 석축처럼 보이는 단이 남아 있다. 이 단은 35~70× 35~55㎝ 크기의 할석을 이용하였는데 현재 2~3단 정도 남아 있고, 높이 는 80㎝이다. 북쪽은 70~120×35~40㎝ 크기의 자연 암반들이 마치 석축 된 것처럼 보이고 있다. 주위에는 자연 암반들이 흩어져 있을 뿐, 유물은 수 습할 수 없었다.
이처럼 주민들에 의해‘신봉화산’으로 불리는 봉화산에는 봉수대로 추정 할 만한 유구나 유물이 전혀 남아 있지 않은 형편이다. 뿐만 아니라 문헌에 도 봉화산 봉수대에 대한 기록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다만 1988년에 간행 된『마을유래지』에 주민들의 전언을 언급하면서 구봉화산 봉수대가 고려 중기에 축조되어 사용되어 오다가 조선중기 이후에 지금의 봉화산으로 옮 겨졌다고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따라서 유구도 없을 뿐만 아니라 문헌 근거도 없으므로 이곳에 봉수대가 있었다고 판단하기는 어렵다. 다만 구봉화산보다 약간 낮고, 순천도호부의 성황당산 봉수에 보다 가깝게 위치해 있으므로 조선후기에 간이식으로 이 곳에서 봉수를 하였을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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