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유적과 유물사지(寺址)
분류 : 불교유적과 유물
간략설명 : 사지(寺址) 1) 옥룡사지 일원(玉龍寺址一圓) ㉮ 소재지 : 광양시 옥룡면 추산리 302 외(외산마을) ㉯ 시기 : 통일신라~조선 ㉰ 연혁 및 현황백운산(해발 1218m)의 한 지맥인 백계산(해발 253m)의 남쪽 중턱에 자리잡고 있으며, 사역 주변에 동백나무가 가득 차 있어 절경을 이루고 있다. 전체 면 적 182,645㎡이며 사적 제407호(1998.
1. 옥룡사지 일원(玉龍寺址一圓)
㉮ 소재지 : 광양시 옥룡면 추산리 302 외(외산마을)
㉯ 시기 : 통일신라~조선
㉰ 연혁 및 현황
백운산(해발 1218m)의 한 지맥인 백계산(해발 253m)의 남쪽 중턱에 자리잡고 있으며, 사역 주변에 동백나무가 가득 차 있어 절경을 이루고 있다. 전체 면 적 182,645㎡이며 사적 제407호(1998. 8. 3)로 지 정∙보호되고 있다. 이 절은 통일신라시대에 중수(重修)되어 선승이자 풍수지리설의 대가로 알려진 선각국사(先覺國師) 도선(道詵)이 서기 864년부터 그가 입적한 898년까지 35년간이나 주석했을 뿐 아니라 통진대사(洞眞大師) 경보(慶甫)∙지문(志文)등이 법맥을 이어 왔고 나말여초의 쌍비와 쌍탑(부도)이 전해져 그 이름이 일찍부터 알려져 왔다. 그러나 1878년에 화재를 당해 폐찰이 되면서 천년이상 밝혀 왔던 법등 은 꺼지고 사역(寺域)은 점차 페허화 되었다. 1994~1999년까지 순천대학 교 박물관에서 4차례의 조사를 실시하여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도선과 경 보의 부도와 비가 있던 탑비전지(塔碑殿址: 일명 비석거리)에서 부도를 보 호하였던 2동의 건물지가 노출되어 최초로 나말여초 시기의 부도전(浮屠 殿)이 조사되었다. 도선의 부도전에서는 8각 지대석 아래의 석관내에서 도선의 석관(길이 95㎝, 너비 54㎝, 높이 45㎝)이 출토되었으며 석관안에는 그의 인골(人骨) 이 물속에 잠겨 있었다. 이 인골로 보아 도선은 화장(火葬)을 하지 않고 우 리의 전통장법인 세골장(洗骨葬)을 하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도선비(證聖慧燈塔碑)편은 발견되지 않아 이동되었거나 파손되지 않고 묻혀있을 가능성이 있으며, 경보비(寶雲塔碑)편은 아주 잔편으로 100점 이상 발견되어 산산이 깨진 것으로 드러났다 절터의 건물지는 상층만 조사하였기 때문에 대체로 조선시대의 건물지 만 조사되었는데 여러 동의 건물지가 노출되었고‘玉龍寺’,‘ 成化十日年 丙伸’,‘ 萬曆十七年 己丑’,‘ 松峙’명등의 명문와, 분청사기, 순백자 등의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다. 이 건물지 아래층에는 여러 층의 유구층이 확인되 어 앞으로 조사가 더 진행되면 초창기의 유구도 그 모습을 알 수 있을 것으 로 기대된다.
2. 운암사지(雲岩寺址)

㉮ 소재지 : 광양시 옥룡면 추산리 추동마을 북쪽
㉯ 시기 : 통일신라~조선
㉰ 연혁 및 현황
이 사지는 옥룡면 추산리 추동마을 북쪽 골짜기 에 있다고 구전되고 있으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운암사는‘道詵國師碑陰記’에“咸通六 年乙 酉創雲岩寺”라 한 점으로 보아 도선국사가 서기 865년에 창건하였음을 알수 있다. 그 후 고려시대의 운암사는 옥룡사 도선국사비가 세워질 무렵인 1150년경에 주지 지문(志文)의 이름이 등장하고 있어 계속 사세는 이어지 고 있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운암사는 백계산에 있다는 기록이 있고 「梵宇攷」에는「금폐」라고 되어있다. 이 내용으로 미루어 16세기까지는 사 세를 이어왔으나 18세기에 들어와 폐사되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는 박득수 스님이 옛 운암사라고 추정되는 지역에 1990년대 중반부 터 운암사를 지어 사세를 확장하고 있다.
3. 송천사지(松川寺址)

㉮ 소재지 : 광양시 옥룡면 동곡리 선동
㉯ 시기 : 미상
㉰ 연혁 및 현황
백운산을 배경으로 한 절터는 현재는 논∙주택 지로 되어 있어 사찰의 정확한 위치나 규모를 알 수는 없으나 주민들이 전하는 금당지, 천불전지, 나한전지라고 부르는 지역이 있으며 곳곳에 초석 과 축대∙와편등이 산재해 있다. 송천사는 도선국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나 이를 뒷받침할 만한 문헌이 나 유물들은 현재로서는 찾을 수 없다. 현재까지 송천사에 관한 기록 중 가 장 오래된 것으로는「신증동국여지승람」권40 광양현 불우조(佛宇條)에 보 이고 있는데‘松川寺雲岩寺俱在白鷄山’이라 기록되어 있다. 또한「동국여 지승람」「동국여지지」「여지도서」(1760년), 「가람고」등의 사서에 등장하 는 것으로 보아 18세기 중엽까지는 있었는데「범우고」에‘금폐’라고 한 것 으로 보아 이때 한동안 폐사되었다가 19세기의 읍지에 다시 등장하는 것으 로 미루어 중창된 것으로 보인다. 그 후 송천사는 6∙25전쟁 전까지 사찰이 있었다고 현지 주민들이 전하 고 있는 것으로 보아 1950년대에 폐사되어 지금에 이른 것으로 여겨진다.
4. 개룡사지(開龍寺址)

㉮ 소재지 : 광양시 봉강면 신룡리 개룡
㉯ 시기 : 미상
㉰ 연혁 및 현황
이 사지는 봉강면 신룡리 개룡마을 뒤편 골짜기, 즉 계족산(鷄足山)의 동편 골짜기에 위치하는데 현재는 잡초만 무성할 뿐 흔적을 찾기 어려우며 단 지 와편(瓦片)들만이 산재한다. 문헌기록은「범우고」에‘개룡사재 계족산’이라 고 기록되어 있어 18세기에는 개룡사가 이곳에 있 었다는 사실만 알려줄 뿐 더 이상의 내용은 알 수 없다.
5. 전 망해사지(傳望海寺址)

㉮ 소재지 : 광양시 골약동 금곡
㉯ 시기 : 통일신라~고려
㉰ 연혁 및 현황
이 사지는 골약동 금곡마을 앞 300m지점의 이 홍구씨 소유의 논 주변에 있다, 북서로 봉화산과 구봉산 줄기가 흐르다 멈춘 곳에 금곡마을이 있지 만 사지는 산줄기와는 떨어져 위치한 점이 주목된 다. 사지의 남쪽으로 광양제철 진출입 철도가 있 고, 일제시대 초기까지만 해도 바닷물이 인근까지 들어왔던 지역이다. 이 지역은‘행이앗들’,‘ 행앳 들’‘, 해인들’‘, 망해사들’로불리우며망해사라는절이있었다고전한다. 이곳에서는 통일신라에서 고려시대에 걸친 토기편과 와편이 산재한다. 하지만 망해사와 관련된 유물이나 명문이 발견되지는 않았으며 초석등도 흔적을 찾을 수가 없어 그 규모를 짐작하기 어렵다. 다만 가야산이 가까운 곳에 있으며 바다와 인접한 지형상에서 유래한 듯 하며 평지가람일 가능성 이 있는 점 등은 주목된다.
6. 황룡사지(黃龍寺址)

㉮ 소재지 : 광양시 진상면 황죽리 신황
㉯ 시기 : 조선
㉰ 연혁 및 현황
이 사지는 신황마을 진상 북초등학교 뒤편에 있는데 현재 절반은 민가가 들어서 있고 절반은 논으로 경작되고 있다. 논과 그 주변에는 초석들과 와편, 도자기편들이 산재되 어 있다. 황룡사는 도선국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하 고 있으나 기록이 없어 알 수 없다. 다만 사서로는 조선시대에 간행된「여지도서」 「범우고」「가람고」「광양읍지」등에‘백운산에 있 다’는 내용만 전할 뿐 더 이상의 내용은 없고, 1925년에 간행된 읍지에는‘금폐’라고 한 바 황룡 사는 조선후기까지 법등을 밝혀오다 금세기에 들어와서 폐사되었음을 알 수 있다. 황룡사는「동국여지승람」이나「동국여지지」에도 나타나지 않다가 18세 기 문헌인「여지도서」부터 사서에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설령 그 이전부터 존재하였다 하더라도 사세가 미약하였던가 아니면 조그만 암자의 성격을 띤 것에 불과하였고 사찰의 규모를 갖춘 것은 18세기 이후로 보인다. 현재 이곳 논과 주변에는 초석들과 와편, 자기편들이 산재되어 있다.
7. 보운사지(普雲寺址)

㉮ 소재지 : 광양시 광양읍 구산리 신기
㉯ 시기 : 미상
㉰ 연혁 및 현황
이곳은 봉강의 백운저수지 못 미쳐 오른쪽의 우 두마을을 지나 신기마을 뒤편 내우산의 동쪽 하면 에 위치한다. 사지는 현재는 밭과 논으로 개간되 어 그 흔적을 찾기 어 려우며 간혹 주변에서 와편 들이 나온다고 한다. 최근에 신기마을에 거주하는 전재주씨가 사지에서 지 석과 하대석이 1석인 석등재를 수습하여 자신의 집에 보관하고 있다.
8. 왕사암지(王師庵址)

㉮ 소재지 : 광양시 다압면 금천리 서동
㉯ 시기 : 미상
㉰ 연혁 및 현황
이 사지는 다압면 금천리 서동마을 절골에 있는데 서동마을에서 하천리로 넘어가는 계곡을 따라 한참 걸어서 올라가면 8 부 능선정도 되는 높은 곳에 위치한다. 사지는 현 재 계단식 논으로 경작되고 있으며 장소가 협소하 고 산간오지여서 절이 있었다면 아주 소규모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왕사 암은 통일신라 말 도선국사가 창건하여 그의 제자 들이 살았는데 이곳에서 정성껏 정진하면 깨달음 을 받아 왕사(王師)가 난다는 곳이다. 창건당시 도선국사가 토끼로 암수 한쌍을 만들어 법당 건너편 바위밑에 동쪽을 향해 세워 놓았다고 하는데 15여 년 전에 누군가가 파기하여 버렸다고 한다. 이 사찰은 임진왜란 이후에 폐사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사지에는 건물지와 와편등이 남아있고 밑에 위치한 민가주변에는 돌구유와 성혈석이 있다.
9. 용곡사지(龍谷寺址)

㉮ 소재지 : 광양시 옥곡면 대죽리 오동
㉯ 시기 : 미상
㉰ 연혁 및 현황
이 사지는 오동마을 건너편 탑골에 있다. 주변은 밭으로 경작되고 있으며 축대일부가 밭 가장자리 에 남아있다. 유물은 와편과 자기편들이 산재되어 있고 석탑의 옥석 1점이 밭 가운데 방치되어 있다. 자기편들 중에는 초기 청자에 해당하는 순청자가 있기도 하며 그 밖의 대 부분은 조선후기 백자편들이다. 사서나 읍지에도 나오지 않으며 다만 민간 구전으로 전해오는 사찰로 도선국사가 기지진압(基地鎭壓)을 위해 세웠다 고 한다. 사찰의 귀중한 것은 일제시대에 일본인들이 가져가 버렸고, 이곳에는 현 재 석탑의 옥개석이 남아있다. 이 석탑은 8∙15광복 이후까지 있었는데 언 젠가 파괴되어 없어졌다고 한다.
10. 부도암지(浮屠庵址)

㉮ 소재지 : 광양시 옥곡면 묵백리 부두
㉯ 시기 : 미상
㉰ 연혁 및 현황
옥곡면 묵백리 부두마을 서북쪽에 있는데 현재 는 논으로 경작되고 있으며 규모가 작아서 절의 규모 역시 소규모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창건에 대한 기록은 없어 초창(初創)은 알 수없고 다만 1895경에 간행된「호남읍지」에‘부도암 재현 동 35리’라고 되어 있어 19세기 말에 부도암이 현의 동쪽 35리에 있었음이 확인될 뿐이며 언제 폐사 되었는지도 확실하지 않다. 사지에 남아있는 유물 은 부도 1기와 와편(瓦片)들이 있다.
11. 광양 골약동 고길 사지(寺址) Ⅰ
㉮ 소재지 : 광양시 골약동 고길
㉯ 시기 : 미상
㉰ 연혁 및 현황
고길마을은 봉화산의 산줄기가 감싸고 있는 곳이며 마을 뒤로 500m 지 점에 저수지가 나오고 이곳에서 다시 200m 정도 오르면 산 중턱에 암자터 가 나온다. 이 암자터는 축대의 일부만 남아있을 뿐 암자의 흔적은 거의 찾 아볼 수없다. 주민들의 전언에 의하면 일제시대 금동사리함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 로 미루어 소규모의 암자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자연석을 쌓아 석축으 로 삼았는데 동-서 방향으로 20m정도의 길이로 군데군데 석축이 남아있 으며, 높이는 30m~50m로 조그만 암자가 들어설만한 면적이다. 이곳에서 북서로 200m지점에 또 다른 암자터가 있다.
12. 광양 골약동 고길 사지(寺址)Ⅱ
㉮ 소재지 : 광양시 골약동 고길
㉯ 시기 : 미상
㉰ 연혁 및 현황
고길마을 뒷산 성주골의 여희동에 있는 암자터 중 위쪽에 있는 사지이다. 이 사지는 남동방향으로 20m길이의 자연석으로 쌓은 석축인데 그 높이가 50~100㎝정도이다. 무너져 형상이 변경되어 있으나 석축이 부분적으로 남아있다. 와편은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13. 용장사지(龍藏寺址)
㉮ 소재지 : 광양시 골약동 성황리 용장
㉯ 시기 : 고려시대
㉰ 연혁 및 현황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에 의하면「높이 8척의 5층 석탑이 있다」고 조 사되어있다. 그러나 실제 이곳의 석탑은 3층 석탑이며, 이 석탑의 조성시기 는 대략 고려 후기로 보이므로 적어도 고려시대부터는 사찰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으나, 언제 폐사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현재 이곳의 석탑은 1976 년에 파손된 채 방치된 것을 보수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곳에 위치한 광양 성황동 3층석탑(光陽城隍洞三層石塔)은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5호(1972. 1. 29)로 지정∙보호되고 있다. 이 석탑은 지대석 과 하층기단 중석을 각각 별석으로 하여 4매의 판석으로 짜고 사면에는 우 주(隅柱)와 중앙에 탱주( 柱)가 있는데 상면으로 상층기단을 받기 위한 몰딩을 생략해 버린 것이 특이하다. 탑신부는 옥개석과 탑신을 각 일석(一石)씩으로 하였고, 각층 탑신에는 사우주형(四隅柱形)을 보였다. 이 석탑은 조각수법이 세련되지 못하고 일 부 양식에서 퇴화된 점에서 고려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14. 가야산 사지(伽倻山寺址) Ⅰ
㉮ 소재지 : 광양시 중마동 가야산
㉯ 시기 : 미상
㉰ 연혁 및 현황
마동 저수지를 지나 관음사에서 북동으로 산길을 따라 400m 오르다 고 개를 넘으면 평지가 전개되는데 이곳이 절터다. 관음사 주지에 의하면 이곳 을‘아랫절터’‘, 작은절터’라고부른다. 이곳 사지에는 약간의 축대가 부분적으로 원형을 유지하고 있으며, 주변 의 계단식 논과 함께 약 1,000여 평의 넓이이다. 석축의 높이는 1~1.5m이 며 서쪽 석축 바로 아래 절이 있을 때 샘으로 사용했던 절샘이 있으며 현재 는 와우마을의 수원지로 사용하고 있다. 주변에는 와편과 자기편이 산재해 있으나 초창연대와 폐찰연대는 기록이 없어서 알 수가 없다. 이곳에서 북쪽으로 150m 지점에 웃절터가 있다.
15. 가야산 사지(伽倻山寺址)Ⅱ
㉮ 소재지 : 광양시 중마동 가야산
㉯ 시기 : 미상
㉰ 연혁 및 현황
이곳은‘웃절터’, ‘큰절터’로 불리는 곳으로‘아랫절터’에서 북으로 150m 떨어진 곳이다. 가로 20m, 너비 30m의 크기로 다듬지 않은 자연석 을 사용해 석축을 쌓았는데 높이는 1.5~2.5m에 이른다. 중앙은 숲이 우거져 건물지는 확인할수 없으나 석축은 아직 견고하게 남 아 있다. 축대의 서쪽 앞면에 절샘으로 사용되었던 수원지가 있고 뒤편에 전주 이씨 등의 묘가 있 다. 맷돌이 있었다 하나 확인되지 않는다. 와편과 청자편이 출토되었다.
16. 광양 중마동 불당골 사지(寺址)

㉮ 소재지 : 광양시 중마동 사동
㉯ 시기 : 미상
㉰ 연혁 및 현황
사동마을은 마동에서 가야산 서쪽을 향해 약 1 ㎞정도 야산계곡을 타고 올라가야 한다. 사동에서 는 마을 주변의 논밭은 물론 민가의 어느 곳에서 든지 고와편(古瓦片)과 자기편이 수습되고 있다. 사동마을의 뒷배경으로는 가야산의 지맥이 연 결되고 있으며 세 군데의 협곡이 있는데 그 이름 은각각‘산재골’,‘ 불당골’‘절박골’이다. 마을주 민의 구전에 의하면 이 사동절은 빈대가 많아 스 님들이 절에서 불을 지르고 떠나고 나서 없어졌다 고 한다. 불당골 암자터로 전해지는 현지에는 2단의 층단을 이르고 있는 평 지로 몇 년 전까지는 논으로 경작된 듯하나 현재는 폐농되어 수풀이 우거 진 상태이다. 상단의 건물지는 가로 15m, 세로 7m 규모이며, 하단의 건물지는 가로 15m, 세로 10m로 두군데 모두 조그마한 암자였던 것으로 보인다. ‘불당골’또는‘절박골’은 그 지명에서 암시해 주듯 원래는 사동에 있던 본당과 관련된 암자터임이 분명한 것 같으며 사동에 있었다는 사지(寺址)는 마을 전체에서 와편(瓦片)과 자기편(磁器片)이 수습되고 있어 그 법당의 위치 가 어디쯤인지 현재로서는 추정이 불가능하다.
17. 봉강 조령리 외탑이골 사지(寺址)
㉮ 소재지 : 광양시 봉강면 조령리 필동
㉯ 시기 : 미상
㉰ 연혁 및 현황
외탑이골 사지는 봉강면 조령리 필동마을 뒤편 외탑이골의 중턱에 자리잡고 있다. 필동마을에서 뒤편 골짜기를 따라 약 1㎞정도 올라가면 약간 평 평한 곳이 나오는데 이곳이 사지(寺址)이며, 초석이 있으나 잡초와 나무가 우거져있고 이곳까지는 이 산을 관리하기 위하여 광양에 거주하는 박형도 씨가 넓은 길을 만들어 놓았다.
18. 옥룡 추산리 운암골 사지(寺址)
㉮ 소재지 : 광양시 옥룡면 추산리
㉯ 시기 : 미상
㉰ 연혁 및 현황
옥룡면 추산리 운암골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도선국사가 창건하였다 고 하며 그의 어머니가 살았다고 한다. 사지(寺址)에는 방형 비좌 1점이 남 아있다.
19. 진상 어치리 지계골 사지(寺址)

㉮ 소재지 : 광양시 진상면 어치리 지계
㉯ 시기 : 조선
㉰ 연혁 및 현황
지계골 사지는 지계마을 뒤편 골짜기에 여러 흔적 을 남기고 있다. 이곳은 백운산의 줄기인 억불봉 동쪽 계곡에 속하는 오지이다. 건물지는 마을 중앙의 서수 홍씨 집과 마을 뒤편 계단식 논의 일부와 대밭 등지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초석∙축대∙와편 등이 남아있다. 유물은 부도기단석∙맷돌∙돌구유∙와편 등이 있었으나 돌구유는 최근 마당을 시멘트로 포장하면서 묻어버렸다.
2.) 송림사지(松林寺址)
㉮ 소재지 : 광양시 옥룡면 동곡리 동동
㉯ 시기 : 미상
㉰ 연혁 및 현황
이 사지는 옥룡면 동곡리 동동마을 앞 계곡 건너편 중턱 산자락에 위치한 다. 이곳 송림사는 도선국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사찰 중의 한 곳으로 현재 아주 작은 밭으로 개간되었으며 주변은 대나무가 무성하고 돌절구 1 점이 유일하게 남아있다. 이 사지에 대한 기록으로는「梵宇考」에‘在白鷄山今廢’라는 기록으로 보아 아마 18세기 이전에는 폐사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鄭進士文集」 에「松林寺記」가 있어 전한다.
21. 옥천사지(玉泉寺址)
㉮ 소재지 : 광양시 옥곡면 대죽리 백양
㉯ 시기 : 미상
㉰ 연혁 및 현황
이 사지는 백양동 마을 뒤편 옥천골에 있었으나 지금은 대밭과 밤나무 밭 으로 변해 흔적을 찾기 어렵다. 이 사지는 도선국사가 창건했다는 설이 전 해 내려오고 있으며 탑이 8∙15광복 이후까지도 있었다고 전하나 지금은 흔적도 없다. 이 사지와 관련해서「湖南邑誌」광양현 사찰조에‘금폐’라고 하는 기록으 로 보아 19세기 이전에 폐사된 것을 알 수 있는 사지이다.
22. 백암사지(柏庵寺址)
㉮ 소재지 : 광양시 옥곡면 묵백리 백암
㉯ 시기 : 미상
㉰ 연혁 및 현황
이 사지는 옥곡면 묵백리 백암마을 서편에 위치한데 현재 대나무가 우거져 사지를 조사하기가 어렵다. 주민들의 전하는 이야기에 의하면 초석이 지 금까지도 남아있고 와편들이 흩어져 있다고 한다. 이곳 묵백리에는 묵방사지(墨坊寺址), 수도암지(修道庵址), 금편암지(金 扁庵址)등의 사지들이 있다고 전하는데 이곳 지형이 좁은 협곡만 있어 절 이 있었다고 전하나 모두 작은 규모의 암자들이었을 것을 보인다.
23. 초남리 불당골 사지(寺址)
㉮ 소재지 : 광양시 광양읍 초남리
㉯ 시기 : 미상
㉰ 연혁 및 현황
봉화산 7부 능선에 있는데 이곳 사지는‘동백나무 골짝’이라 부르는 곳 과 불당골이라 부르는 곳 등 2군데 있는데 양자거리는 200m쯤 되며 축대 가 남아있다.
24. 통사 불당골 사지(寺址)
㉮ 소재지 : 광야시 황길리 통사
㉯ 시기 : 미상
㉰ 연혁 및 현황
이 사지는 통사마을에서 약 500m 떨어진 곳인데, 마을 뒤편으로 연결된 협곡에 위치하며 구봉화산 남쪽에 위치한다. 사지로 추정되는 곳은 현재 밭으로 개간되어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사적 과 관련된 유구는 발견되지 않는다. 아마 밭의 개간으로 사지와 관련된 유 구는 파괴된 듯하다. 이곳은 몇 개의 층단을 이룬 경사지로 초석이나, 자기 편 등이 보이지 않아 사지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
25. 문헌에 나타난 사(寺)와 사지(寺址)
문헌과 구전에 의한 광양시의 폐사지는 약 70여곳에 이른다. 이 가운데 사지명(寺址名)이 있는 것은 31건인데 이들은 대체로 사지가 남아있는 경 우가 많았고 나머지는 불당골∙절골∙붓뭇골 등으로 불리우며 사지의 흔 적이 거의 없는 형편이다. 지면관계상 모두의 이곳에 대한 내역을 기록할 수 없으므로 그 내역은「光陽郡의 文化遺蹟」1993. 順天大學校博物館. P. 138~P. 142를 참고하기 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