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유적과 유물사찰(寺刹)
분류 : 불교유적과 유물
간략설명 : 사찰(寺刹) 1) 성불사(成佛寺) ㉮ 소재지 : 광양시 봉강면 조령리 859(하조) ㉯ 시기 : 고려 ㉰ 연혁 및 현황현재로서는 성불사(成佛寺)가 언제 이곳에 창건 되었으며 또 그 이후의 내력에 대해서 확인 할 수 없다. 성불사는 도선국사의 창건으로 전해지고 있 으나 기록이 없어 고려시대까지는 내용을 알 수 없다. 최근에 사찰을 신축 하면서 고려시대의 와편
1. 성불사(成佛寺)

㉮ 소재지 : 광양시 봉강면 조령리 859(하조)
㉯ 시기 : 고려
㉰ 연혁 및 현황
현재로서는 성불사(成佛寺)가 언제 이곳에 창건 되었으며 또 그 이후의 내력에 대해서 확인 할 수 없다. 성불사는 도선국사의 창건으로 전해지고 있 으나 기록이 없어 고려시대까지는 내용을 알 수 없다. 최근에 사찰을 신축 하면서 고려시대의 와편들이 출토되어 절에서 보관하고 있다. 18세기의 범우고(梵宇攷)에는 현의 북쪽 30리에 성불사가 있다고 하였 으며, 읍지에는 북쪽 40리에 성불암이 있다고 한 점으로 보아 조선후기의 규모는 알 수없으나 현재의 자리에 성불사가 있었음은 확인된다. 현재는 7 동의 건물이 있는 규모로 커졌지만 1960년대만 하더라도 초가집의 형식으 로 조그마한 규모였다고 하며, 성불사가 있는 계곡에는 20여 개의 암자가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사탑고적고(寺塔古蹟攷)에‘成佛庵在全羅南道光陽郡鳳岡面 鳥嶺里有浮屠高三尺刻曰明月隱峯之塔’이라 하였고, 두 문헌에 간단히 소개되는 것만으로는 사찰연혁을 알 수 없으나 오래전부터 成佛寺또는 成 佛庵이란 이름으로 존속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三尺높이의 붕은봉탑(朋 隱峯塔)이란 부도가 있었다는 것으로 보아서 상당기간 수도 도장으로 존재 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제14연대 반란사건과 6∙25동란을 겪으면서 이 지역 대부분의 암자와 성불사가 소실되었는데 1962년에 무현(無現: 본명 朴泰春)스님이 옛 터 에 조그마한 암자를 세웠으며 1965년에 김금통(金金通)이 약 1년간 암자 를 지켜오다 1966년부터 다시 무현스님이 지속적으로 사찰을 중건하여 현 재에 이르고 있는데 이 절에는 500관 가량의 동종이 있는데 1960년대 초 광양읍 인서리에 사는 김용순(金容順)이라는 처녀의 현몽에 의해 만들어 진 것이라 전한다. 한편 1975년부터 지속적으로 사세를 확장하여 석가모니 사리탑이 모셔 져 있고 대웅전을 다시 건립하는 등 규모가 큰 절로 변모되었으며 최근년에는 다시 중창불사하여 대웅보전∙극락전∙삼성각 등을 새로이 지었다.
2. 백운사(白雲寺)

㉮ 소재지 : 광양시 옥룡면 동곡리 111(선동)
㉯ 시기 : 고려
㉰ 연혁 및 현황
백운산의 남서쪽 해발 900m의 높은 곳에 위치 한 백운사는 송천사에 딸린 암자로 고려 보조국사 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근세기에 들어와 1948년 제14연대 반란사건 때 불타버린 것을 1963년 소구산(蘇九山)이 복구하였다고 한다. 현재의 건물은 최근 광양시의 보조를 받아 새롭게 중창하였으며, 법당에 는 18세기경에 조성된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이 있고, 광서 임오년(1882, 고 종 19년)에 조성된 산신탱화 1점이 있다.
3. 상백운암(上白雲庵)

㉮ 소재지 : 광양시 옥룡면 동곡리
㉯ 시기 : 미상
㉰ 연혁 및 현황
상백운암은 백운산 정상 아래에 있으며 현재는 스님 1명이 거주하고 있다. 송천사(松川寺)에 딸 린 암자로 고려 전기 보조국사가 창건하였다고 전 해지고 있다. 1962년 송광사의 방장스님이었던 구산스님이 옛 터에 조그마한 암자를 다시 복원하였다. 현재는 법당과 요사 를 겸한 허름한 건물과 그 옆에 조그마한 각(閣)이 1동 더 있다.
4. 중흥사(中興寺)

㉮ 소재지 : 광양시 옥룡면 운평리 산23. 상운마을
㉯ 시기 : 통일신라
㉰ 연혁 및 현황
중흥사의 연혁을 알게 해 주는 확실한 자료는 없으나 구전에 의하면 신라 48대 경문왕때 도선국사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한다. 원래의 사명(寺名)은 문헌자료가 없어 알 수 없으며 현재의 사명(寺名) 은 중흥산성(中興山城)내에 있어 근래에 사찰을 중창하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경내에는 통일신라 말인 9세기에 건립된 삼층석탑이 있어 이 무렵부 터 사찰이 조영되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이후부터 는 조선시대까지는 연혁을 제대로 알 수 없으며 임 진왜란 때 소실되었다는 내용이 전하기도 한다. 20세기에 들어와 소규모의 건물들이 몇 번 건립 되기도 하였고 최근에는 1963년 하태호(河太鎬)가 다시 중건하였고 1980 년대부터 대대적으로 중창하여 현재의 모습으로 갖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