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물유적

불교유적과 유물사지(寺址)

분류 : 불교유적과 유물

간략설명 : 제8편 문 화 21) 光陽郡誌編纂委員會, 1983, 『光陽郡誌』, p.894. 사진8-243 : 옥룡사지 일원 ⑪ 장방청(長房廳) : 육방의 합의장소. 현 시장관사 동편에 있었는데 1915년 광양 금융조합 청사로이용되었다. 지금은 옛 자리에 민가가 들어 섰다. ⑫ 라장청(羅將廳) : 군인 장교의 집무소. 현 시장관사 ⑬ 형방청(刑房廳) : 행형(行刑)하던

제8편 문 화
21) 光陽郡誌編纂委員會, 1983,
『光陽郡誌』, p.894.
사진8-243 : 옥룡사지 일원


⑪ 장방청(長房廳) : 육방의 합의장소. 현 시장관사 동편에 있었는데
1915년 광양 금융조합 청사로이용되었다. 지금은 옛 자리에 민가가 들어 섰다.
⑫ 라장청(羅將廳) : 군인 장교의 집무소. 현 시장관사
⑬ 형방청(刑房廳) : 행형(行刑)하던 곳.
⑭ 통인청(通引廳) : 현감의 비서실. 등기소의 서쪽에 붙어 있었다.
⑮ 향청(鄕廳) : 수령에 자문역할을 하는 지방 자치기구. 수령보좌, 풍속 교정, 향리의 규찰, 정령의 민간전달의 임무를 행하였다. 지금의 공보관과 제일약국을 잇는 골목의 남쪽편에 있었다. 1907년 9월 현재의 광양서초등 학교 전신인 사립 희양학교가 이곳에서 개교하였으며 그 후 이곳은 한때 접객업소인 부용관으로도 사용되었다.
� 현사(縣司) : 戶長의 집무소. 현 읍사무소의 서쪽에 붙어 있었다.
� 관노청(官奴廳) : 관노들의 거처. 지금의 시장관사 동북편에 있었는데
1911년 훼철됨. 21)
집필 : 순천대학교 박물관 책임연구원 최인선
제4절 불교유적과 유물
1. 사지(寺址)
① 옥룡사지 일원(玉龍寺址 一圓)
㉮ 소재지 : 광양시 옥룡면 추산리 302 외(외산마을)
㉯ 시기 : 통일신라~조선
㉰ 연혁및 현황
백운산(해발 1218m)의 한 지맥인 백계산(해발
253m)의 남쪽 중턱에 자리잡고 있으며, 사역 주변에 동백나무가 가득 차 있어 절경을 이루고 있다. 전체 면 적 182,645㎡이며 사적 제407호(1998. 8. 3)로 지 정∙보호되고 있다.
이 절은 통일신라시대에 중수(重修)되어 선승이자 풍수지리설의 대가로 알려진 선각국사(先覺國師)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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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문화유산


선(道詵)이 서기 864년부터 그가 입적한 898년까지 35년간이나 주석했을
뿐 아니라 통진대사(�眞大師) 경보(慶甫)∙지문(志文)등이 법맥을 이어 왔고 나말여초의 쌍비와 쌍탑(부도)이 전해져 그 이름이 일찍부터 알려져 왔다.
그러나 1878년에 화재를 당해 폐찰이 되면서 천년이상 밝혀 왔던 법등 은 꺼지고 사역(寺域)은 점차 페허화 되었다. 1994~1999년까지 순천대학 교 박물관에서 4차례의 조사를 실시하여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도선과 경 보의 부도와 비가 있던 탑비전지(塔碑殿址 : 일명 비석거리)에서 부도를 보 호하였던 2동의 건물지가 노출되어 최초로 나말여초 시기의 부도전(浮屠 殿)이 조사되었다.
도선의 부도전에서는 8각 지대석 아래의 석관내에서 도선의 석관(길이
95㎝, 너비 54㎝, 높이 45㎝)이 출토되었으며 석관안에는 그의 인골(人骨) 이 물속에 잠겨 있었다. 이 인골로 보아 도선은 화장(火葬)을 하지 않고 우 리의 전통장법인 세골장(洗骨葬)을 하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도선비(證聖慧燈塔碑)편은 발견되지 않아 이동되었거나 파손되지 않고 묻혀있을 가능성이 있으며, 경보비(寶雲塔碑)편은 아주 잔편으로 100점 이상 발견되어 산산이 깨진 것으로 드러났다
절터의 건물지는 상층만 조사하였기 때문에 대체로 조선시대의 건물지 만 조사되었는데 여러 동의 건물지가 노출되었고‘玉龍寺’,‘成化十日年 丙伸’,‘萬曆十七年 己丑’,‘松峙’명등의 명문와, 분청사기, 순백자 등의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다. 이 건물지 아래층에는 여러 층의 유구층이 확인되 어 앞으로 조사가 더 진행되면 초창기의 유구도 그 모습을 알 수 있을 것으 로 기대된다.
<참고문헌>
�崔仁善 외. 1995「光陽 玉龍 寺址 Ⅰ」- 精密地表調査. 順天大學校 博物館
�崔仁善. 1997「光陽 玉龍寺 先覺國師 道詵의 浮屠殿址와 石棺「」文化史學 6∙7合輯)
② 운암사지(雲岩寺址)
㉮ 소재지 : 광양시 옥룡면 추산리 추동마을 북쪽
㉯ 시기 : 통일신라~조선
㉰ 연혁및 현황
이 사지는 옥룡면 추산리 추동마을 북쪽 골짜기 에 있다고 구전되고 있으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운암사는‘道詵國師碑陰記’에“咸通�年乙
酉創雲岩寺”라 한 점으로 보아 도선국사가 서기 865년에 창건하였음을 알 사진8-244 : 현재의 운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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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편 문 화
<참고문헌>
�崔仁善. 1993「光陽郡의 佛敎 文化遺蹟「」光陽郡의 文化遺 蹟」順天大學校 博物館
�文化遺蹟分布地圖-光陽市.
2000. 順天大學校 博物館
사진8-245 : 송천사지
<참고문헌>
�文明大 외. 1989「. 松川寺址 調 査 報告書」東國大學校 博物館
�崔仁善. 1993.「光陽郡의 佛敎 文化遺蹟『」光陽郡의 文化遺 蹟』順天大學校 博物館


수 있다. 그 후 고려시대의 운암사는 옥룡사 도선국사비가 세워질 무렵인
1150년경에 주지 지문(志文)의 이름이 등장하고 있어 계속 사세는 이어지 고 있었다.「신증동국여지승람」에 운암사는 백계산에 있다는 기록이 있고
「梵宇攷」에는「금폐」라고 되어있다. 이 내용으로 미루어 16세기까지는 사 세를 이어왔으나 18세기에 들어와 폐사되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는 박득수 스님이 옛 운암사라고 추정되는 지역에 1990년대 중반부 터 운암사를 지어 사세를 확장하고 있다.
③ 송천사지(松川寺址)
㉮ 소재지 : 광양시 옥룡면 동곡리 선동
㉯ 시기: 미상
㉰ 연혁및 현황
백운산을 배경으로 한 절터는 현재는 논∙주택 지로 되어 있어 사찰의 정확한 위치나 규모를 알 수는 없으나 주민들이 전하는 금당지, 천불전지, 나한전지라고 부르는 지역이 있으며 곳곳에 초석
과 축대∙와편등이 산재해 있다.
송천사는 도선국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나 이를 뒷받침할 만한 문헌이 나 유물들은 현재로서는 찾을 수 없다. 현재까지 송천사에 관한 기록 중 가 장 오래된 것으로는「신증동국여지승람」권40 광양현 불우조(佛宇條)에 보 이고 있는데‘松川寺雲岩寺俱在白鷄山’이라 기록되어 있다. 또한「동국여 지승람」「동국여지지」「여지도서」(1760년),「가람고」등의 사서에 등장하 는 것으로 보아 18세기 중엽까지는 있었는데「범우고」에‘금폐’라고 한 것 으로 보아 이때 한동안 폐사되었다가 19세기의 읍지에 다시 등장하는 것으 로 미루어 중창된 것으로 보인다.
그 후 송천사는 6∙25전쟁 전까지 사찰이 있었다고 현지 주민들이 전하 고 있는 것으로 보아 1950년대에 폐사되어 지금에 이른 것으로 여겨진다.
④ 개룡사지(開龍寺址)
㉮ 소재지 : 광양시 봉강면 신룡리 개룡
㉯ 시기: 미상
㉰ 연혁및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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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문화유산


이 사지는 봉강면 신룡리 개룡마을 뒤편 골짜기,
즉 계족산(鷄足山)의 동편 골짜기에 위치하는데 현재는 잡초만 무성할 뿐 흔적을 찾기 어려우며 단 지 와편(瓦片)들만이 산재한다. 문헌기록은「범우고」에‘개룡사재 계족산’이라
고 기록되어 있어 18세기에는 개룡사가 이곳에 있 었다는 사실만 알려줄 뿐 더 이상의 내용은 알 수 없다.
⑤ 전 망해사지(傳 望海寺址)
㉮ 소재지 : 광양시 골약동 금곡
㉯ 시기 : 통일신라~고려
㉰ 연혁및 현황
이 사지는 골약동 금곡마을 앞 300m지점의 이 홍구씨 소유의 논 주변에 있다, 북서로 봉화산과 구봉산 줄기가 흐르다 멈춘 곳에 금곡마을이 있지 만 사지는 산줄기와는 떨어져 위치한 점이 주목된 다. 사지의 남쪽으로 광양제철 진출입 철도가 있 고, 일제시대 초기까지만 해도 바닷물이 인근까지 들어왔던 지역이다. 이 지역은‘행이앗들’,‘행앳
사진8-246 : 개룡사지
<참고문헌>
�崔仁善. 1993.「光陽郡의 佛 敎文化遺蹟 『」光陽郡의 文 化遺蹟』順天大學校 博物館
사진8-247 : 전 망해사지
들’‘,
해인들’‘,
망해사들’로 불리우며 망해사라는 절이 있었다고 전한다.
이곳에서는 통일신라에서 고려시대에 걸친 토기편과 와편이 산재한다. 하지만 망해사와 관련된 유물이나 명문이 발견되지는 않았으며 초석등도 흔적을 찾을 수가 없어 그 규모를 짐작하기 어렵다. 다만 가야산이 가까운 곳에 있으며 바다와 인접한 지형상에서 유래한 듯 하며 평지가람일 가능성 이 있는 점 등은 주목된다.
⑥ 황룡사지(黃龍寺址)
㉮ 소재지 : 광양시 진상면 황죽리 신황
㉯ 시기: 조선
㉰ 연혁및 현황
이 사지는 신황마을 진상 북초등학교 뒤편에 있는데 현재 절반은 민가가
<참고문헌>
�成春慶. 1989「東光陽市의 佛敎遺蹟」『東光陽市 文化 遺蹟學術調査 報告書』全南
大學校 博物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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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8-248 : 황룡사지
<참고문헌>
�崔仁善.「光陽郡의 佛敎文 化遺蹟『」光陽郡의 文化遺 蹟』順天大學校 博物館
사진8-249 : 보운사지
<참고문헌>
�崔仁善. 1993「. 光陽郡의 佛 敎文化遺蹟『」光陽郡의 文化 遺蹟』順天大學校 博物館


들어서 있고 절반은 논으로 경작되고 있다. 논과
그 주변에는 초석들과 와편, 도자기편들이 산재되 어 있다. 황룡사는 도선국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하 고 있으나 기록이 없어 알 수 없다.
다만 사서로는 조선시대에 간행된「여지도서」 범우고」「가람고」「광양읍지」등에‘백운산에 있 다’는 내용만 전할 뿐 더 이상의 내용은 없고,
1925년에 간행된 읍지에는‘금폐’라고 한 바 황룡 사는 조선후기까지 법등을 밝혀오다 금세기에 들어와서 폐사되었음을 알 수 있다.
황룡사는「동국여지승람」이나「동국여지지」에도 나타나지 않다가 18세 기 문헌인「여지도서」부터 사서에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설령 그 이전부터 존재하였다 하더라도 사세가 미약하였던가 아니면 조그만 암자의 성격을 띤 것에 불과하였고 사찰의 규모를 갖춘 것은 18세기 이후로 보인다. 현재 이곳 논과 주변에는 초석들과 와편, 자기편들이 산재되어 있다.
⑦ 보운사지(普雲寺址)
㉮ 소재지 : 광양시 광양읍 구산리 신기
㉯ 시기: 미상
㉰ 연혁및 현황
이곳은 봉강의 백운저수지 못 미쳐 오른쪽의 우 두마을을 지나 신기마을 뒤편 내우산의 동쪽 하면 에 위치한다. 사지는 현재는 밭과 논으로 개간되 어 그 흔적을 찾기 어 려우며 간혹 주변에서 와편
들이 나온다고 한다. 최근에 신기마을에 거주하는 전재주씨가 사지에서 지 석과 하대석이 1석인 석등재를 수습하여 자신의 집에 보관하고 있다.
⑧ 왕사암지(王師庵址)
㉮ 소재지 : 광양시 다압면 금천리 서동
㉯ 시기: 미상
㉰ 연혁및 현황
이 사지는 다압면 금천리 서동마을 절골에 있는데 서동마을에서 하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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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문화유산


로 넘어가는 계곡을 따라 한참 걸어서 올라가면 8
부 능선정도 되는 높은 곳에 위치한다. 사지는 현 재 계단식 논으로 경작되고 있으며 장소가 협소하 고 산간오지여서 절이 있었다면 아주 소규모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왕사 암은 통일신라 말 도선국사가 창건하여 그의 제자 들이 살았는데 이곳에서 정성껏 정진하면 깨달음 을 받아 왕사(王師)가 난다는 곳이다. 창건당시
도선국사가 토끼로 암수 한쌍을 만들어 법당 건너편 바위밑에 동쪽을 향해 세워 놓았다고 하는데 15여 년 전에 누군가가 파기하여 버렸다고 한다. 이 사찰은 임진왜란 이후에 폐사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사지에는 건물지와 와편등이 남아있고 밑에 위치한 민가주변에는 돌구유와 성혈석이 있다.
⑨ 용곡사지(�谷寺址)
㉮ 소재지 : 광양시 옥곡면 대죽리 오동
㉯ 시기: 미상
㉰ 연혁및 현황
이 사지는 오동마을 건너편 탑골에 있다. 주변은 밭으로 경작되고 있으며 축대일부가 밭 가장자리 에 남아있다. 유물은 와편과 자기편들이 산재되어 있고 석탑의 옥석 1점이 밭 가운데 방치되어 있다.
자기편들 중에는 초기 청자에 해당하는 순청자가 있기도 하며 그 밖의 대 부분은 조선후기 백자편들이다. 사서나 읍지에도 나오지 않으며 다만 민간 구전으로 전해오는 사찰로 도선국사가 기지진압(基地鎭壓)을 위해 세웠다 고 한다.
사찰의 귀중한 것은 일제시대에 일본인들이 가져가 버렸고, 이곳에는 현 재 석탑의 옥개석이 남아있다. 이 석탑은 8∙15광복 이후까지 있었는데 언 젠가 파괴되어 없어졌다고 한다.
⑩ 부도암지(浮屠庵址)
㉮ 소재지 : 광양시 옥곡면 묵백리 부두
㉯ 시기: 미상
사진8-250 : 왕사암지
<참고문헌>
�崔仁善. 1993.「光陽郡의 佛 敎文化遺蹟『」光陽郡의 文化 遺蹟』順天大學校 博物館
사진8-251 : 용곡사지
<참고문헌>
�文化遺蹟分布地圖 - 全南 光陽市-. 2000년. 順天大 學校 博物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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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편 문 화
사진8-252 : 부도암지
<참고문헌>
�崔仁善. 1993「光陽郡의 佛 敎文化遺蹟『」光陽郡의 文化 遺蹟』順天大學校 博物館
<참고문헌>
�成春慶. 1989「. 東光陽市의 佛 敎遺蹟『」東光陽市 文化遺蹟, 學術調査報告書』全南
大學校 博物館


㉰ 연혁및 현황
옥곡면 묵백리 부두마을 서북쪽에 있는데 현재 는 논으로 경작되고 있으며 규모가 작아서 절의 규모 역시 소규모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창건에 대한 기록은 없어 초창(初創)은 알 수없고 다만
1895경에 간행된「호남읍지」에‘부도암 재현 동
35리’라고 되어 있어 19세기 말에 부도암이 현의 동쪽 35리에 있었음이 확인될 뿐이며 언제 폐사 되었는지도 확실하지 않다. 사지에 남아있는 유물
은 부도 1기와 와편(瓦片)들이 있다.
⑪ 광양 골약동 고길 사지(寺址) Ⅰ
㉮ 소재지 : 광양시 골약동 고길
㉯ 시기: 미상
㉰ 연혁및 현황
고길마을은 봉화산의 산줄기가 감싸고 있는 곳이며 마을 뒤로 500m 지 점에 저수지가 나오고 이곳에서 다시 200m 정도 오르면 산 중턱에 암자터 가 나온다. 이 암자터는 축대의 일부만 남아있을 뿐 암자의 흔적은 거의 찾 아볼 수없다.
주민들의 전언에 의하면 일제시대 금동사리함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 로 미루어 소규모의 암자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자연석을 쌓아 석축으 로 삼았는데 동-서 방향으로 20m정도의 길이로 군데군데 석축이 남아있 으며, 높이는 30m~50m로 조그만 암자가 들어설만한 면적이다. 이곳에서 북서로 200m지점에 또 다른 암자터가 있다.
⑫ 광양 골약동 고길 사지(寺址)Ⅱ
㉮ 소재지 : 광양시 골약동 고길
㉯ 시기: 미상
㉰ 연혁및 현황
고길마을 뒷산 성주골의 여희동에 있는 암자터 중 위쪽에 있는 사지이다. 이 사지는 남동방향으로 20m길이의 자연석으로 쌓은 석축인데 그 높이가
50~100㎝정도이다. 무너져 형상이 변경되어 있으나 석축이 부분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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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문화유산
 
남아있다. 와편은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⑬ 용장사지(�藏寺址)
㉮ 소재지 : 광양시 골약동 성황리 용장
㉯ 시기 : 고려시대
㉰ 연혁및 현황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에 의하면「높이 8척의 5층 석탑이 있다」고 조 사되어있다. 그러나 실제 이곳의 석탑은 3층 석탑이며, 이 석탑의 조성시기 는 대략 고려 후기로 보이므로 적어도 고려시대부터는 사찰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으나, 언제 폐사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현재 이곳의 석탑은 1976 년에 파손된 채 방치된 것을 보수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곳에 위치한 광양 성황동 3층석탑(光陽 城隍洞 三層石塔)은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5호(1972. 1. 29)로 지정∙보호되고 있다. 이 석탑은 지대석 과 하층기단 중석을 각각 별석으로 하여 4매의 판석으로 짜고 사면에는 우 주(隅柱)와 중앙에 탱주(柱)가 있는데 상면으로 상층기단을 받기 위한 몰딩을 생략해 버린 것이 특이하다.
탑신부는 옥개석과 탑신을 각 일석(一石)씩으로 하였고, 각층 탑신에는 사우주형(四隅柱形)을 보였다. 이 석탑은 조각수법이 세련되지 못하고 일 부 양식에서 퇴화된 점에서 고려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⑭ 가야산 사지(伽倻山 寺址) Ⅰ
㉮ 소재지 : 광양시 중마동 가야산
㉯ 시기: 미상
㉰ 연혁및 현황
마동 저수지를 지나 관음사에서 북동으로 산길을 따라 400m 오르다 고 개를 넘으면 평지가 전개되는데 이곳이 절터다. 관음사 주지에 의하면 이곳
<참고문헌>
�成春慶. 1989「. 東光陽市의 佛敎遺蹟『」東光陽市 文化遺 蹟, 學術調査報告書』全南
大學校 博物館
<참고문헌>
�朝鮮總督府.「朝鮮寶物古蹟 調査資料」1942.
�全羅南道「文化財圖錄」- 道 指定文化財 篇 - 1988
을‘아랫절터’‘,
작은절터’라고 부른다.
이곳 사지에는 약간의 축대가 부분적으로 원형을 유지하고 있으며, 주변 의 계단식 논과 함께 약 1,000여 평의 넓이이다. 석축의 높이는 1~1.5m이 며 서쪽 석축 바로 아래 절이 있을 때 샘으로 사용했던 절샘이 있으며 현재 는 와우마을의 수원지로 사용하고 있다.
주변에는 와편과 자기편이 산재해 있으나 초창연대와 폐찰연대는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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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편 문 화
 
<참고문헌>
�成春慶. 1989「. 東光陽市의 佛 敎遺蹟『」東光陽市 文化遺蹟 學術調査報告書』全南 大學校 博物館
<참고문헌>
�成春慶. 1989「. 東光陽市의 佛 敎遺蹟『」東光陽市 文化遺蹟 學術調査報告書』全南 大學校 博物館
이 없어서 알 수가 없다. 이곳에서 북쪽으로 150m 지점에 웃절터가 있다.
⑮ 가야산 사지(伽倻山 寺址)Ⅱ
㉮ 소재지 : 광양시 중마동 가야산
㉯ 시기: 미상
㉰ 연혁및 현황
이곳은‘웃절터’,‘큰절터’로 불리는 곳으로‘아랫절터’에서 북으로
150m 떨어진 곳이다. 가로 20m, 너비 30m의 크기로 다듬지 않은 자연석 을 사용해 석축을 쌓았는데 높이는 1.5~2.5m에 이른다.
중앙은 숲이 우거져 건물지는 확인할수 없으나 석축은 아직 견고하게 남 아 있다. 축대의 서쪽 앞면에 절샘으로 사용되었던 수원지가 있고 뒤편에 전주 이씨 등의 묘가 있 다. 맷돌이 있었다 하나 확인되지 않는다. 와편과 청자편이 출토되었다.
� 광양 중마동 불당골 사지(寺址)
㉮ 소재지 : 광양시 중마동 사동
㉯ 시기: 미상
㉰ 연혁및 현황
사진8-253 : 불당골
사동마을은 마동에서 가야산 서쪽을 향해 약 1
㎞정도 야산계곡을 타고 올라가야 한다. 사동에서 는 마을 주변의 논밭은 물론 민가의 어느 곳에서 든지 고와편(古瓦片)과 자기편이 수습되고 있다. 사동마을의 뒷배경으로는 가야산의 지맥이 연 결되고 있으며 세 군데의 협곡이 있는데 그 이름 은 각각‘산재골’,‘불당골’‘절박골’이다. 마을주 민의 구전에 의하면 이 사동절은 빈대가 많아 스 님들이 절에서 불을 지르고 떠나고 나서 없어졌다
고 한다. 불당골 암자터로 전해지는 현지에는 2단의 층단을 이르고 있는 평 지로 몇 년 전까지는 논으로 경작된 듯하나 현재는 폐농되어 수풀이 우거 진 상태이다.
상단의 건물지는 가로 15m, 세로 7m 규모이며, 하단의 건물지는 가로
15m, 세로 10m로 두군데 모두 조그마한 암자였던 것으로 보인다.‘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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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문화유산


골’또는‘절박골’은 그 지명에서 암시해 주듯 원래는 사동에 있던 본당과
관련된 암자터임이 분명한 것 같으며 사동에 있었다는 사지(寺址)는 마을 전체에서 와편(瓦片)과 자기편(磁器片)이 수습되고 있어 그 법당의 위치 가 어디쯤인지 현재로서는 추정이 불가능하다.
� 봉강 조령리 외탑이골 사지(寺址)
㉮ 소재지 : 광양시 봉강면 조령리 필동
㉯ 시기: 미상
㉰ 연혁및 현황
외탑이골 사지는 봉강면 조령리 필동마을 뒤편 외탑이골의 중턱에 자리잡고 있다. 필동마을에서 뒤편 골짜기를 따라 약 1㎞정도 올라가면 약간 평
평한 곳이 나오는데 이곳이 사지(寺址)이며, 초석이 있으나 잡초와 나무가 우거져있고 이곳까지는 이 산을 관리하기 위하여 광양에 거주하는 박형도 씨가 넓은 길을 만들어 놓았다.
� 옥룡 추산리 운암골 사지(寺址)
㉮ 소재지 : 광양시 옥룡면 추산리
㉯ 시기: 미상
㉰ 연혁및 현황
옥룡면 추산리 운암골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도선국사가 창건하였다 고 하며 그의 어머니가 살았다고 한다. 사지(寺址)에는 방형 비좌 1점이 남 아있다.
� 진상 어치리 지계골 사지(寺址)
㉮ 소재지 : 광양시 진상면 어치리 지계
㉯ 시기: 조선
㉰ 연혁및 현황
지계골 사지는 지계마을 뒤편 골짜기에 여러 흔적 을 남기고 있다. 이곳은 백운산의 줄기인 억불봉 동쪽 계곡에 속하는 오지이다. 건물지는 마을 중앙의 서수
홍씨 집과 마을 뒤편 계단식 논의 일부와 대밭 등지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참고문헌>
�成春慶. 1989「. 東光陽市의 佛敎遺蹟『」東光陽市 文化遺 蹟 學術調査報告書』全南 大學校 博物館
사진8-254 : 외탑이골 사지
<참고문헌>
「文化遺蹟分布地圖」-光陽市-
. 2000. 順天大學校 博物館
<참고문헌>
「文化遺蹟分布地圖」-光陽市-
. 2000. 順天大學校 博物館
사진8-255 : 지계골 부도좌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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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편 문 화
 
<참고문헌>
�崔仁善. 1993「光陽郡의 佛敎 文化遺蹟『」光陽郡의 文化遺 蹟』順天大學校 博物館
<참고문헌>
�崔仁善. 1993「光陽郡의 佛敎 文化遺蹟『」光陽郡의 文化遺 蹟』順天大學校 博物館
<참고문헌>
「湖南邑誌」文化財管理局「文化 遺蹟總覽」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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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석∙축대∙와편 등이 남아있다.
유물은 부도기단석∙맷돌∙돌구유∙와편 등이 있었으나 돌구유는 최근 마당을 시멘트로 포장하면서 묻어버렸다.
� 송림사지(松林寺址)
㉮ 소재지 : 광양시 옥룡면 동곡리 동동
㉯ 시기: 미상
㉰ 연혁및 현황
이 사지는 옥룡면 동곡리 동동마을 앞 계곡 건너편 중턱 산자락에 위치한 다. 이곳 송림사는 도선국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사찰 중의 한 곳으로 현재 아주 작은 밭으로 개간되었으며 주변은 대나무가 무성하고 돌절구 1 점이 유일하게 남아있다.
이 사지에 대한 기록으로는「梵宇考」에‘在白鷄山今廢’라는 기록으로 보아 아마 18세기 이전에는 폐사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鄭進士文集」 에「松林寺記」가 있어 전한다.
� 옥천사지(玉泉寺址)
㉮ 소재지 : 광양시 옥곡면 대죽리 백양
㉯ 시기: 미상
㉰ 연혁및 현황
이 사지는 백양동 마을 뒤편 옥천골에 있었으나 지금은 대밭과 밤나무 밭 으로 변해 흔적을 찾기 어렵다. 이 사지는 도선국사가 창건했다는 설이 전 해 내려오고 있으며 탑이 8∙15광복 이후까지도 있었다고 전하나 지금은 흔적도 없다.
이 사지와 관련해서「湖南邑誌」광양현 사찰조에‘금폐’라고 하는 기록으 로 보아 19세기 이전에 폐사된 것을 알 수 있는 사지이다.
� 백암사지(柏庵寺址)
㉮ 소재지 : 광양시 옥곡면 묵백리 백암
㉯ 시기: 미상
㉰ 연혁및 현황
이 사지는 옥곡면 묵백리 백암마을 서편에 위치한데 현재 대나무가 우거
제5장 문화유산

져 사지를 조사하기가 어렵다. 주민들의 전하는 이야기에 의하면 초석이 지
금까지도 남아있고 와편들이 흩어져 있다고 한다.
이곳 묵백리에는 묵방사지(墨坊寺址), 수도암지(修道庵址), 금편암지(金 扁庵址)등의 사지들이 있다고 전하는데 이곳 지형이 좁은 협곡만 있어 절 이 있었다고 전하나 모두 작은 규모의 암자들이었을 것을 보인다.
� 초남리 불당골 사지(寺址)
㉮ 소재지 : 광양시 광양읍 초남리
㉯ 시기: 미상
㉰ 연혁및 현황
봉화산 7부 능선에 있는데 이곳 사지는‘동백나무 골짝’이라 부르는 곳 과 불당골이라 부르는곳등 2군데 있는데 양자거리는 200m쯤 되며 축대 가 남아있다.
� 통사 불당골 사지(寺址)
㉮ 소재지 : 광야시 황길리 통사
㉯ 시기: 미상
㉰ 연혁및 현황
이 사지는 통사마을에서 약 500m 떨어진 곳인데, 마을 뒤편으로 연결된 협곡에 위치하며 구봉화산 남쪽에 위치한다.
사지로 추정되는 곳은 현재 밭으로 개간되어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사적 과 관련된 유구는 발견되지 않는다. 아마 밭의 개간으로 사지와 관련된 유 구는 파괴된 듯하다. 이곳은 몇 개의 층단을 이룬 경사지로 초석이나, 자기 편 등이 보이지 않아 사지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
� 문헌에 나타난 사(寺)와 사지(寺址)
문헌과 구전에 의한 광양시의 폐사지는 약 70여곳에 이른다. 이 가운데 사지명(寺址名)이 있는 것은 31건인데 이들은 대체로 사지가 남아있는 경 우가 많았고 나머지는 불당골∙절골∙붓뭇골 등으로 불리우며 사지의 흔 적이 거의 없는 형편이다. 지면관계상 모두의 이곳에 대한 내역을 기록할 수 없으므로 그 내역은「光陽郡의 文化遺蹟」1993. 順天大學校 博物館. P.
138~P. 142를 참고하기 바람.
<참고문헌>
�崔仁善.「光陽郡의 佛敎文 化遺蹟『」光陽郡의 文化遺 蹟』1993 順天大學校 博物館
<참고문헌>
�『東光陽市 文化遺蹟 學術調 査報告書』1989. 全南大學校 博物館
315
제8편 문 화
 
2. 사찰(寺刹)
사진8-256 : 성불사(1965년)
① 성불사(成佛寺)
㉮ 소재지 : 광양시 봉강면 조령리 859(하조)
㉯ 시기: 고려
㉰ 연혁및 현황
현재로서는 성불사(成佛寺)가 언제 이곳에 창건 되었으며 또 그 이후의 내력에 대해서 확인 할 수 없다. 성불사는 도선국사의 창건으로 전해지고 있
으나 기록이 없어 고려시대까지는 내용을 알 수 없다. 최근에 사찰을 신축 하면서 고려시대의 와편들이 출토되어 절에서 보관하고 있다.
18세기의 범우고(梵宇攷)에는 현의 북쪽 30리에 성불사가 있다고 하였 으며, 읍지에는 북쪽 40리에 성불암이 있다고 한 점으로 보아 조선후기의 규모는 알 수없으나 현재의 자리에 성불사가 있었음은 확인된다. 현재는 7 동의 건물이 있는 규모로 커졌지만 1960년대만 하더라도 초가집의 형식으 로 조그마한 규모였다고 하며, 성불사가 있는 계곡에는 20여 개의 암자가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사탑고적고(寺塔古蹟攷)에‘成佛庵 在 全羅南道 光陽郡 鳳岡面 鳥嶺里 有浮屠高三尺 刻曰 明月隱峯之塔’이라 하였고, 두 문헌에 간단히 소개되는 것만으로는 사찰연혁을 알 수 없으나 오래전부터 成佛寺 또는 成 佛庵 이란 이름으로 존속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三尺높이의 붕은봉탑(朋 隱峯塔)이란 부도가 있었다는 것으로 보아서 상당기간 수도 도장으로 존재 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제14연대 반란사건과 6∙25동란을 겪으면서 이 지역 대부분의 암자와 성불사가 소실되었는데 1962년에 무현(無現 : 본명 朴泰春)스님이 옛 터 에 조그마한 암자를 세웠으며 1965년에 김금통(�金通)이 약 1년간 암자 를 지켜오다 1966년부터 다시 무현스님이 지속적으로 사찰을 중건하여 현 재에 이르고 있는데 이 절에는 500관 가량의 동종이 있는데 1960년대 초 광양읍 인서리에 사는 김용순(�容順)이라는 처녀의 현몽에 의해 만들어 진 것이라 전한다.
한편 1975년부터 지속적으로 사세를 확장하여 석가모니 사리탑이 모셔 져 있고 대웅전을 다시 건립하는 등 규모가 큰 절로 변모되었으며 최근년
316
제5장 문화유산


에는 다시 중창불사하여 대웅보전∙극락전∙삼성각 등을 새로이 지었다.
② 백운사(白雲寺)
㉮ 소재지 : 광양시 옥룡면 동곡리 111(선동)
㉯ 시기: 고려
㉰ 연혁및 현황
백운산의 남서쪽 해발 900m의 높은 곳에 위치 한 백운사는 송천사에 딸린 암자로 고려 보조국사 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근세기에 들어와
1948년 제14연대 반란사건 때 불타버린 것을
1963년 소구산(蘇九山)이 복구하였다고 한다.
현재의 건물은 최근 광양시의 보조를 받아 새롭게 중창하였으며, 법당에 는 18세기경에 조성된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이 있고, 광서 임오년(1882, 고 종 19년)에 조성된 산신탱화 1점이 있다.
③ 상백운암(上白雲庵)
㉮ 소재지 : 광양시 옥룡면 동곡리
㉯ 시기: 미상
㉰ 연혁및 현황
상백운암은 백운산 정상 아래에 있으며 현재는 스님 1명이 거주하고 있다. 송천사(松川寺)에 딸 린 암자로 고려 전기 보조국사가 창건하였다고 전 해지고 있다. 1962년 송광사의 방장스님이었던
구산스님이 옛 터에 조그마한 암자를 다시 복원하였다. 현재는 법당과 요사 를 겸한 허름한 건물과 그 옆에 조그마한 각(閣)이 1동 더 있다.
④ 중흥사(中興寺)
㉮ 소재지 : 광양시 옥룡면 운평리 산23. 상운마을
㉯ 시기 : 통일신라
㉰ 연혁및 현황
중흥사의 연혁을 알게 해 주는 확실한 자료는 없으나 구전에 의하면 신라
48대 경문왕때 도선국사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한다. 원래의 사명(寺名)은
<참고문헌>
「文化遺蹟分布地圖」-光陽市-.
2000. 順天大學校 博物館
사진8-257 : 백운사
<참고문헌>
「文化遺蹟分布地圖」-光陽市-
. 2000. 順天大學校 博物館
사진8-258 : 상백운암
<참고문헌>
「文化遺蹟分布地圖」-光陽市-
. 2000. 順天大學校 博物館
317
제8편 문 화
사진8-259 : 중흥사
<참고문헌>
『光陽郡의 文化遺蹟』1993. 順 天大學校 博物館
사진8-260 : 무등암 목조 대세지 보살좌상
사진8-261 : 백운사 목조아미타 여래좌상


문헌자료가 없어 알 수 없으며 현재의 사명(寺名)
은 중흥산성(中興山城)내에 있어 근래에 사찰을 중창하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경내에는 통일신라 말인 9세기에 건립된 삼층석탑이 있어 이 무렵부 터 사찰이 조영되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이후부터 는 조선시대까지는 연혁을 제대로 알 수 없으며 임 진왜란 때 소실되었다는 내용이 전하기도 한다.
20세기에 들어와 소규모의 건물들이 몇 번 건립 되기도 하였고 최근에는 1963년 하태호(河太鎬)가 다시 중건하였고 1980 년대부터 대대적으로 중창하여 현재의 모습으로 갖춘 것이다.
3. 불상(佛像)
① 무등암 목조대세지보살좌상(無等庵 木造大勢至菩薩坐像)
㉮ 소재지 : 광양시 다압면 신원리 산20-1. 원동마을
㉯ 시기: 조선
㉰ 연혁및 현황
※제8편 문화, 제5장 문화유산∙제1절 개관, 1.광양시의 지정문화재
3, 지정문화재별 해제 편에 상세히 기술되어 이중기재가 되므로 생 략∙참조
② 백운사 목조아미타 여래좌상(白雲寺 木造阿彌陀 如來坐像)
㉮ 소재지 : 광양시 옥룡면 동곡리 111
㉯ 시기: 조선
㉰ 연혁및 현황
이 목조여래좌상은 백운사의 주불로 봉안되어 있으며 크기는 전체 높이 63㎝, 무릎너비 45㎝, 무릎높이 9㎝이다. 상호는 사각형에 가 깝고 중간과 정상계주가 있다. 양미간 사이에 백호가 있으며 귀는 길 고 목은 짧다. 법의는 통견이며 군의가 일자형을 이루고 띠 매듭은 없다. 상체는 약간 굽어있다. 양손은 따로 만들어 끼워 넣었으며 수 인은 엄지와 3∙4지를 구부려 미타정인을 이루고 있다.
이로 보아 이 좌상은 아미타여래로 추정되며, 사각형에 가까운 상호, 법
318
제5장 문화유산


의의 형식, 상체의 굽은 모습 등으로 볼때 조성시기는 조선후기로 추정된다.
③ 상백운암 목조삼존불감(上白雲菴 木造三尊佛龕)
㉮ 소재지 : 광양시 옥룡면 동곡리(현재 동국대학 교 박물관 소장)
㉯ 시기: 조선
㉰ 연혁및 현황
이 목조불감은 상백운암에 원래 봉안되어 있었는 데 현재는 동국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전 체높이가 28.3㎝이며, 둥근나무를 삼등분해서 본존 인 아미타불과 좌우로 관음과 지장보살을 부조한 삼

존불 형식의 불감이다. 본존불은 상현좌 위에 결가부좌하였으며, 상호는 타 원형에 가깝고 통견을 하고 있다. 좌우 보살은 입상이며 지장은 손을 합장 하고 있고 관음은 보관을 쓰고 있다. 대좌밑을 원통모양으로 뚫어 복장을 안치하였는데 복장기와 후령통(높이 5㎝, 지름 2㎝)이 나왔다. 복장기는 푸른 명주 바탕에 붉은 글씨로 썼는데 다음과 같다.
�崇禎十七年八月日 彌陀佛願尊 像今旣畢□□□緣俱登覺岸者願以此功 德及 一切我等 與象生 大施主□□□ �主 �□□�主 □□□□□畵員英賢 (贊?)이 기문에 의하면 1684년에 영현이란 사람이 조성하였으며 모두 불 상을 만든 공덕으로 성불도를 이루기를 원하고 있다.
④ 중흥사 석조여래좌상(中興寺 石造如來坐像)
㉮ 소재지 : 광양시 옥룡면 운평리 산23. 상운마을
㉯ 시기: 조선
㉰ 연혁및 현황
불상의 상호는 장타원형으로 길쭉하여 굳어있는 표정을 짓고 있다. 머리는 소발이며 앞부분이 조금 파손되어 있고 눈은 석장승처럼 크고 튀어나왔다. 입은 굳게 다물고 있으며 양 귀는 아주 짧고 작다. 짧은 목은 깨져 이등분되었고 삼도는 없다. 법의는

우견편단처럼 보이나 우측 팔에 3조선의 음각선이 있어 통견이며, 수인은 항마촉지인이다.
<참고문헌>
「文化遺蹟分布地圖」-光陽市-
. 2000. 順天大學校 博物館
사진8-262 : 상백운암 목조 삼존불감
<참고문헌>
文明大. 1980「朝鮮朝 木造阿 彌陀三尊佛龕의 한 考察「」考 古美術」146. 147호
사진8-263 : 중흥사 석조여래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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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편 문 화
 
<참고문헌>
「光陽郡의 文化遺蹟」1993. 順 天大學校 博物館
사진8-264 : 중흥산성 석조 지장보살반가상
사진8-265 : 광양 성황동 3층 석탑
배면은 밋밋한데 아랫부분에 장방형의 얕은 홈이 파여 있어 형식적이나
마 불복장을 시설하려고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어깨에 비해 허리부분이 넓 고 무릎도 간략하게 처리되어 전체적인 조각수법이 치졸하며 다분히 조선 후기의 민불양식 성격을 갖고 있다.
⑤ 중흥산성 석조지장보살 반가상(中興山城 石 造地藏菩薩 半跏像)
㉮ 소재지 : 광양시 옥룡면 운평리 산23. 상운마을
㉯ 시기: 고려
㉰ 연혁및 현황
※제8편 문화, 제5장 문화유산 제1절 개관 1.광 양시의 지정문화재 3)지정문화재편 해제편에 상세히 기술되어 이중기재가 되므로 생략∙참고
4. 탑(塔)
① 광양 성황동 3층 석탑
㉮ 소재지 : 광양시 골약동 성황리 749. 용장마을
㉯ 시기: 고려
㉰ 연혁및 현황
(제8편 문화, 제5장 문화유산 제1절 개관 1.광양시의 지정문화 재 3)지정문화재편 해제편에 상세히 기술∙이중기재가 되므로 생 략∙참고)
② 용곡사지 석탑재(�谷寺址 石塔材)
㉮ 소재지 : 광양시 옥곡면 대죽리 오동마을
㉯ 시기: 미상
㉰ 연혁및 현황
이 탑재는 옥곡면 대죽리 오동마을 건너편 탑골에 있다. 이곳은 용곡사지’라고 구전되어 온 곳이며, 주변은 밭과 과수원으로 경 작되고 있다. 탑재는 밭 가운데 옥개석 1점만이 남아있을 뿐 그 밖
의 다른 부재는 없고 주변에 와편과 토기∙자기편들이 산재되어 있다. 옥개
320
제5장 문화유산


석은 자연석 위에 올려져 있는데 낙수면의 경사는 급
한 편이 아니고 우동마루가 뚜렷하며 낙수면의 합각선 은 예리하다. 전각의 반전은 약하고 층급받침은 2단으 로 많이 줄어들었으며 하면에 지름 5㎝, 깊이 1.5㎝의 성혈 2개가 있다. 이 옥개석의 규모는 가로 61㎝, 세로
62㎝, 높이 21㎝이다.
사진8-267 : 중흥산성 삼층석탑
③ 중흥산성 삼층석탑(中興山城 三層 石塔)
㉮ 소재지 : 광양시 옥룡면 운평리 산
23 상운마을
㉯ 시기: 통일 신라
㉰ 연혁및 현황
(제8편 문화, 제5장 문화유산 제1절 개관 1.광양시의 지정문화재 3)지정문 화재편 해제편에 상세히 기술∙이중기 재가 되므로 생략∙참고)
사진8-266 : 용곡사지 석탑재
<참고문헌>
「光陽郡의 文化遺蹟」1993. 順 天大學校 博物館
5. 불화(佛畵)
① 백운사 산신탱화(白雲寺 山神幀畵)
㉮ 소재지 : 광양시 옥룡면 동곡리 111. 선동마을
㉯ 시기: 조선
㉰ 연혁및 현황
이 탱화는 백운사의 법당에 걸려 있으며 견본채색으로 가로
61.5㎝, 세로 93㎝이다. 산신이 중앙에 앉아있고 해학적인 호랑 이가 고개를 길쭉이 내밀면서 돌려 산신을 향하고 있다.
산신의 옷은 V자형의 붉은 옷이고, 산신은 오른손으로 호랑이 엉덩이 부분을 만지고 있다. 화색은 전체적으로 변해서 검은 색 이 많은 편이다. 화면 하단에 화기(畵記) 내용에 의하면 이 산신 탱화는 전라북도 태인의 석탄암에서 조성하여 구례 오산의 사
성암에 봉안하였던 탱화로 광서 임오년(1882, 고종 19년)에 승오(昇旿)∙
사진8-268 : 백운사 산신탱화
321
제8편 문 화
 
<참고문헌>
「文化遺蹟分布地圖」-光陽市-.
2000. 順天大學校 博物館
<참고문헌>「文化遺蹟分布地 圖」-光陽市-. 2000. 順天大學 校 博物館
<참고문헌>
「光陽郡의 文化遺蹟」1993. 順 天大學校 博物館
322
상윤(尙�)∙성련(性連)등의 화사가 그렸다.
② 중흥사 칠성각 칠성탱화(中興寺 七星閣 七星幀畵)
㉮ 소재지 : 광양시 옥룡면 운평리 산23. 상운마을
㉯ 시기: 조선
㉰ 연혁및 현황
이 탱화는 현재 중흥사 칠성각에 봉안되어 있는데 하단에 있는 명문을 보 면 원래는 여천군 흥국사 보광전(普光殿)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가로
152㎝, 세로 159㎝의 규모인 이 탱화는 견본채색(絹本彩色)으로 1873년 에 그려진 것이나 어느 시기에 중흥사에 옮겨 왔는지 알 수 없다.
이 칠성탱화는 딱딱한 묘사나 도식적인 운문(雲文)등 19세기 타락한 양식 을 보여주고 있다.
③ 중흥사 현왕탱화(中興寺 現王幀畵)
㉮ 소재지 : 광양시 옥룡면 운평리 산23. 상운마을
㉯ 시기: 조선
㉰ 연혁및 현황
이 탱화는 현재 중흥사 설선당에 있으며 견본채색으로 규모는 가로 80.5
㎝, 세로 117.5㎝ 이다. 현왕탱화는 사람이 죽어서 3일만에 심판을 받는 장 면을 그린 것이다. 배경은 방에 병풍이 처져 있고 그 앞에 현왕이 의자에 앉 아 있으며 그 밑으로 판관(判官), 녹사(�事)들이 서책을 들고 있다. 화기 (畵記)는 화면의 하단 중앙에 있다. 이 현왕도에는 18세기 후반부터 유행 하여 온 적색(赤色)과 녹색(�色)을 주색으로 사용하였다. 화기(畵記)의 내용에는 원래 이곳 탱화는 경남 하동의 쌍계사 승당에 봉안되었음을 알 수 있고 제작시기는 광서 14년(1888. 고종 25년)이며 화사비구(畵師比 丘)는 묘영(妙英), 품윤(品允)등을 비롯해서 7인이다.
④ 중흥사 신중탱화(中興寺 神衆幀畵)
㉮ 소재지 : 광양시 옥룡면 운평리 산23
㉯ 시기: 조선
㉰ 연혁및 현황
이 탱화는 중흥사 설선당에 있으며, 견본채색으로 규모는 가로 110㎝, 세
제5장 문화유산

로 130㎝이다. 화폭을 2단으로 구분하여 상당에는 제석을 중심으로 하여
그 권속들을 배치하고, 하단에는 위태천을 위주로 한 무장 모습의 신중을 그린 형식을 취하고 있다.
화면 하단 좌측에 가로 30㎝, 세로 6㎝의 화기(畵記)란이 있는데 현재는 지워져 내용을 알 수 없다. 제작시기는 구도나 채색으로 보아 19세기 작으 로 추정된다.
⑤ 옥룡사 산신탱화(玉龍寺 山神幀畵)
㉮ 소재지 : 광양시 옥룡면 추산리 외산
㉯ 시기: 미상
㉰ 연혁및 현황
이 탱화는 옥룡사 대웅전에 걸려 있으며 견본채색(絹本彩色)으로 규모는 가로 56㎝, 세로 80㎝이다. 산신도는 중국 당나라 때 천태산(天台山) 국청 사(國淸寺)에 절의 수호신으로 산왕각(山王閣)을 세우고 산신을 봉안한 이래 당나라 때부터 유행하였다고 한다.
화면 하단의 중앙에는 화기가 있는데 내용으로 보아 정확한 소장처와 제 작연대는 알 수 없고 다만 범길(範吉)이란 사람이 그렸다는 내용만 확인할 수 있을 뿐이며, 근래에 조성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6. 부도(浮屠)
① 봉강 조령리 외탑이골 부도
㉮ 소재지 : 광양시 봉강면 조령리 필동
㉯ 시기: 조선
㉰ 연혁및 현황
조령리 필동마을 뒤편 외탑이골의 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사지(寺址)에서
100m정도 내려오면 길가에 부도 1기가 넘어져 있고 이 부도 때문에 외탑 이골이란 지명이 생겨났다고 한다.
이 부도는 석종형으로 높이 108㎝, 탑신지름 65㎝, 보주높이 16㎝이다. 부도명이「明月隱峯之塔」이라고 하는데 이 부분이 땅속으로 넘어져 있어 확인할 수 없었다. 이 부도의 기단부(95×93×13㎝)는 길 건너편에 있는 데 거칠게 방형으로 다듬었으며 상면에는 부도를 놓을 수 있도록 한쪽만
<참고문헌>
「光陽郡의 文化遺蹟」1993. 順 天大學校 博物館
<참고문헌>
「光陽郡의 文化遺蹟」1993. 順 天大學校 博物館
323
제8편 문 화
<참고문헌>
「光陽郡의 文化遺蹟」1993. 順 天大學校 博物館
<참고문헌>
「光陽郡의 文化遺蹟」1993. 順 天大學校 博物館
<참고문헌>
「文化遺蹟分布地圖」-光陽市-
. 2000. 順天大學校 博物館
324

음각하였다.
‘명월은봉’의 당호를 가진 스님에 대한 행적은 자료가 없어 알 수 없으며 이 부도는 조선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② 부도암지(浮屠庵址) 부도
㉮ 소재지 : 광양시 옥곡면 묵백리 부두
㉯ 시기: 고려~조선
㉰ 연혁및 현황
이 부도는 부두마을에 있는 사지(寺址)에서 위쪽으로 50m정도 올라가 면 성산배씨들의 묘 앞에 있다. 규모는 높이 87㎝, 기단고 13.5㎝, 기단너 비 66㎝, 탑신고 66㎝, 탑신너비 32㎝, 옥개석고 21㎝, 옥개석 높이 52.5㎝ 이다. 형식은 8각세장형(八角細長形)이고 지대석은 없으며 하대석은 큼직 한 2단 각형이 모각된 8각형이며 그 위에 탑신이 올려져 있다.
탑신은 8각형인데 모서리에 원주형 우주가 크게 양각되었을 뿐 다른 조 식은 없다. 8각의 옥개석은 낙수면의 경사가 급하고 우동마루는 뚜렷하다. 하면에 부연이 있고 부분적으로 파손되었다. 상륜부는 유실되고 없다. 제작 시기는 고려말이나 조선초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③ 송천사지(松川寺址) 취암당(翠岩堂) 부도
㉮ 소재지 : 광양시 옥룡면 동곡리 선동
㉯ 시기: 조선
㉰ 연혁및 현황
이 부도는 송천사지 윗편, 선동마을 아래 산기슭에 있다. 형식은 조선후 기 부도의 전형적인 석종형 부도이다. 현재의 높이는 약 100㎝인데 상륜부 가 유실되어 탑신 윗면 중앙에 뚫린 원형 사리공(지름 15.5㎝, 깊이 4.5㎝) 이 노출되어 있고 탑신아래 부분은 결손되어 떨어져 나간 상태이다. 기단부는 방형인데 거칠며 상면에 2단의 원형받침이 모각되었다. 탑신 표면은 잘 다듬어져 있으나 아무런 문양도 없고 다만 세로로‘翠岩堂 乾隆 十一年’이라는 명문이 음각되어 있다. 이로 보아 이 부도의 주인공은 취암 당이란 것과 1746년에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취암당이란 스님에 대해 서는 행적이 알려진 바 없지만 송천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던 스님으로 파악된다.
제5장 문화유산


④ 송천사지 송백당(松柏堂) 부도
㉮ 소재지 : 광양시 옥룡면 동곡리 선동
㉯ 시기: 조선
㉰ 연혁및 현황
응암당 부도와 함께 있는 부도로 전체 높이는 164㎝이다. 비록 상륜의 일부가 깨졌지만 기단부∙탑신부∙상륜부를 모두 갖추 고 있다. 넓은 지대석 위 탑신과 폭이 비슷한 단층기단이 있고 그 위에 탑신이 놓여져 있다.
석종형이 탑신은 8각으로 표면을 다듬어 그 위에‘松柏堂眞塔 乾隆五十八年癸丑二月日立’이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이로 보 아 건립연대는 1789년임을 알 수 있다.

전체적인 비례로 보아 상륜부가 크고 두터우며 보주도 커서 불 균형스럽고 둔중한 느낌을 주는 부도이다.
⑤ 송천사지 응암당(應庵堂) 부도
㉮ 소재지 : 광양시 옥룡면 동곡리 선동
㉯ 시기: 조선
㉰ 연혁및 현황
이 부도는 취암당 부도에서 약 30m가량 위쪽으로 올라가 면 약간 평평한 구릉지대가 나오는데 이곳에 다른 2기의 부 도와 함께 있다. 석종형인 이 부도는 상∙하면이 좁아 세장 한 모습이며 전체높이는 144㎝이다.
원형의 2단 기단부에 탑신좌를 마련하여 그 위에 탑신을 안치하였는데 탑신하단에는 단판연화문을 돌려 장식하였다. 탑신표면에는 아무런 조식이 없고‘應庵之塔’이라는 탑명만 이 새겨져 있다.
⑥ 송천사지 일명(逸名) 부도
㉮ 소재지 : 광양시 옥룡면 동곡리 선동
㉯ 시기: 미상
㉰ 연혁및 현황
앞의 부도들과 함께 있는 부도로 2기 이상의 부도 부재가 쌓아 올려져 있
사진8-269 : 송천사지 송백당 부도
<참고문헌>
「光陽郡의 文化遺蹟」1993. 順 天大學校 博物館
사진8-270 : 송천사지 응암당 부도
<참고문헌>
「光陽郡의 文化遺蹟」1993. 順天大學校 博物館
325
제8편 문 화
사진8-271 : 송천사지 일명부도
<참고문헌>
「光陽郡의 文化遺蹟」1993. 順 天大學校 博物館
사진8-272 : 송천사지「옥봉당」부도
<참고문헌>
「光陽郡의 文化遺蹟」1993. 順 天大學校 博物館
326


어 마치 1기의 부도처럼 보이며 현재 전체높이는
207㎝이다. 가장 위에 있는 옥개석은 송천사지에 남아있는 유물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된 다. 이 옥개석은 높이 34.4㎝, 폭 81.6㎝의 크기로 낙수면이 이루는 아름다운 곡선, 정연한 기와골과 막새기와의 표현, 그리고 처마의 서까래 표현 등의 세부수법이 정교하고 세련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 다. 그러나 그 이하의 부재는 다른 양식을 보이고 있다.
잘 다듬은 방형 지대석 위에 상∙하 2단의 원형 기단석이 놓여있는데 표 면에는 각기 다른 연화문을 2조 선으로 새겨놓았다. 위로 윗변이 넓은 원통 형 탑신이 놓여져 있는데 연꽃이 새겨져 있다. 탑신위에 다소 두터운 4각형 옥개석이 올려져 있는데 낙수면에는 아무런 표시가 없고 4귀의 우동표현 이 보이며 간략화된 귀꽃이 있다.
⑦ 송천사지 옥봉당(玉峯堂) 부도
㉮ 소재지 : 광양시 옥룡면 운평리 상평
㉯ 시기: 조선
㉰ 연혁및 현황
현재 옥룡면사무소 뒤편에 있다. 오륜형에 속한 이 부도는 원형 기단, 오륜형 탑신, 6각형의 옥개석으로 구성되었으며 현 높이는
120㎝이다. 기단석에는 측면에 8엽의 단편연화문을, 상면에는 1 단각형의 몰딩을 조식하였다. 탑신에는 세로로 장방형의 액을 만 들고 그 안에‘玉奉堂’이란 당호를 음각하였다. 옥개석은 낙수면 의 경사가 매우 완만하여 우동마루가 둔중하게 표시되어 있으나 마모가 심한 상태이다.
⑧ 진상 어치리 지계골사지 부도
㉮ 소재지 : 광양시 진상면 어치리 지계
㉯ 시기: 조선
㉰ 연혁및 현황
이 부도는 지계골 사지에 있었는데 1989년에 마을 사람들이 외지인에게
제5장 문화유산


팔아버려 현재는 부도 기단석만 남아있다. 부도 기단석은 부도전지(浮屠殿
址)에 있는데 방형이고 잘 다듬었으며 상면에 1단 각형의 탑신 받침대가 모각되었다. 없어진 부도는 전형적인 석종형 부도로 탑신 하면 중앙에 사리 공이 뚫려있고 보주형 상륜이 있었다.
7. 석등(石燈)
① 보운사지(普雲寺址) 석등재(石燈材)
㉮ 소재지 : 광양시 광양읍 구산리 신기
㉯ 시기: 미상
㉰ 연혁및 현황
이 석등재는 하대석 이하 부분인데 지대석과 하대석 1 석(石)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대석(높이 38㎝, 너비 25
㎝)은 밑에 거칠게 다듬은 지대석이 있고, 면석은 8각으
로 모서리에 3개의 연주문이 세워져 연주형 우주를 이루었고, 각 면에는 인 상이 새겨져 있다.
이 석등은 비록 간주석, 화사석, 옥개석 등 중요부분이 유실되어 전체 내 용은 알 수 없지만 하대석에 조식된 연주형 우주나 안상등이 특이하여 주 목된다. 석등의 하대석에 안상이 나타난 예는 9세기에 조성된 중흥산성 쌍 사자석등을 비롯하여 1093년에 만들어진 나주(�州) 서문외석등(西門外 石燈)에서 볼수 있고 연주형의 우주는 1379년에 조성된 여주 신륵사 보제 존자 석종 앞 석등에서 그 예를 찾아볼 수 있다.
② 중흥산성(中興山城) 쌍사자석등(雙獅子石燈)
㉮ 소재지 : 광양시 옥룡면 운평리 산23(현재 국립광주박물관 소장)
㉯ 시기 : 통일신라
㉰ 연혁및 현황
이 석등은 법주사 쌍사자석등계에 속하는 이형양식(異形樣式)으로 간주 석인 쌍사자를 제외한 모든 부재가 전형 양식을 따르고 있는데 국보 103호 로 지정∙보호되고 있다. 지대석은 방형으로 아무런 문양이 없으며 1석 (石)이다. 기단석 역시 1석이며 하면은 8각으로 각 면에 안상이 조식되었 는데 형태는 주머니 모양을 하고 있다. 상면에는 8엽 단판의 복련연화문이
<참고문헌>
「文化遺蹟分布地圖」-光陽市-
. 2000. 順天大學校 博物館
사진8-273 : 보운사지 석등재
<참고문헌>
「光陽郡의 文化遺蹟」1993. 順 天大學校 博物館
327
제8편 문 화
사진8-274 : 중흥산성 쌍사자 석등
<참고문헌>
「光陽郡의 文化遺蹟」 (P.119~120) 1993. 順天大學 校 博物館
사진8-275 : 송천사지 회은 장로비


조식되었고 판 안에는 넓은 자엽을 구비하고 있다.
간주석인 쌍사지석등을 받치는 괴임대는 원형으로 16엽 단판양 련을 장식한 대와 함께 사자와 연화 상대석을 한 장의 석재에 조각 하였다. 간주석을 쌍사자로 대치하였는데 앞발과 머리부분으로 상 대를 받치고 있다.
연화대 윗면에는 3단의 화사받침을 각출하였다. 화사석은 8각으 로 4면에 화창을 내었고 창 주위에는 1단의 액을 마련한 곳에 창호 (窓戶)를 고정시키기 위한 철정공이 남아있다. 옥개석은 8각으로 밑면에는 1단의 몰딩받침을 구비하고 있으며, 윗면에는 기와골의 표시가 없이 완만하다.
정상에는 연화개식(�花蓋飾)과 2단의 상륜받침, 별석으로 된 연봉형의 보주양식을 완전하게 갖추고 있다. 전체높이는 2.5m이고 제작시기는 통일 신라 말기로 추정된다.
8. 석비(石碑)
① 회은장로비(悔隱長老碑)
㉮ 소재지 : 광양시 옥룡면 동곡리
㉯ 시기: 조선
㉰ 연혁및 현황
이 비는 송천사지의 나한전지(�漢殿址)라 전해지는 건물지 앞의 개울가에 있으며 전남도 유형문화재 제 182호로 지정∙보호되고 있다. 20여년 전까지만 해도 비좌(碑座)가 없었는데 최근에 장방형 의 비좌(가로 122㎝, 세로 59㎝, 높이 29㎝)를 만들어 지금은 각 부 재가 모두 있는 셈이며 전체높이는 274㎝이다.
비신(높이 183㎝, 너비 76㎝, 두께 18.8㎝)은 세장한 장방형으로 곳곳에 총탄의 흔적과 손상이 있다. 비신의 윗면에는「悔隱長老碑 銘」이라고 제명이 전시되어 있고 비문은 해서체이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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