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물유적

문화유산 보전,보호우리고장 문화유산 관외소장 현황

분류 : 문화유산 보전,보호

간략설명 : 우리고장 문화유산 관외소장 현황 (1) 중흥산성 쌍사자 석등 이 석등은 중흥산성 삼층석탑과 함께 지금의 중흥사에 있었 는데 1913년 일본인 소야(小野)씨가 일본으로 옮기려던 것을 주민들의 제지로 옥룡주재소에 보관해 오던 중 1918년 조선 총독부에서 그 가치를 인정하여 서울 경복궁으로 옮겨 갔었다.그후 1959년에 경무대, 1960년에 덕수궁에, 1972

우리고장 문화유산 관외소장 현황

(1) 중흥산성 쌍사자 석등

이 석등은 중흥산성 삼층석탑과 함께 지금의 중흥사에 있었 는데 1913년 일본인 소야(小野)씨가 일본으로 옮기려던 것을 주민들의 제지로 옥룡주재소에 보관해 오던 중 1918년 조선 총독부에서 그 가치를 인정하여 서울 경복궁으로 옮겨 갔었다.
그후 1959년에 경무대, 1960년에 덕수궁에, 1972년에 경복 궁의 중앙박물관으로 각각 옮겨졌으며, 1986년에는 중앙박물 관의 중앙청 이전에 따라 그곳의 야외정 원에 다시 옮겨 전시 되었다. 그 후 국립광주박물관에서는 호남지방의 반출문화재 를 다시 찾아오기 위한 사업의 일환으로 이 석등을 1990년 8 월에 이전하여 1층 중앙 전시실에 전시하고 있다. 규모는 높이 2.5m이며, 국보 제103호로 지정되어 있다.

(2) 전 광양 출토 금동팔각사리기(傳光陽出土金銅八角舍利器)

이 사리기는 광양에서 출토된 것으로 전해져 오고 있으며 현재 일본의 동 경국립박물관에 소장(小倉컬렉션) 되어 있다. 사리기는 사리를 저장하는 용기로 석탑이나 부도에서 주로 출토되고 있으며, 외함과 내함으로 구분되고 있으나 지금은 외함만 남아 있고 그 내부에 있을 내함과 사리 등의 유물은 모두 유실되고 없는 형편이다.
광양 출토 금동 사리기는 덮개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으며 합장하는 보살을 장식한 팔각형의 평면을 가진 사리용기로 매우 우수하며 비교적 잘 보전되어 있다. 기대는 각 측면에 작은 공간 을 표현하고 그 면의 바탕에는 물고기 비늘문양을 채우고 화문 (花紋)을 선각(線刻)으로 조각했다.
몸체(身)는 기대보다 약간 가볍고 작은 팔각 기둥 형태로 각 측면의 바탕에 물고기비늘문양과 천부상(天部像) 한 구씩을 아 주 유려하게 선각하였다. 천부상은 암좌(巖座)에 서서 갑주를 쓰 고 장식용 검과 봉 등의 무기를 들고 있다. 화염이 있는 원형의 두광을 쓰고 있다. 덮개는 팔각형으로 지붕이 있고 지붕 부분에 팔각형의 형태로 합쳐 있으며, 능선을 만들고 능선과 능선 사이에는 물고기 비늘문양 바탕에 화문을 선각 하였다. 덮개의 정상 부분에는 연화좌에 정좌 하고 합장하는 보살상이 놓여 손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보살상은 덮개와는 별도로 만들어져 있고, 덮개 안쪽에서 붙여 놓았다. 보살상의 머리 위에는 약 5.5cm 정도의 구멍이 있고 구멍은 상 내부를 관통해서 덮개 뒤까지 뚫 려있다. 구멍이 어떤 용도로 쓰였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이와 비슷한 8각형식의 사리기는 문경 내화리 삼층석탑 출토 금동팔각형 사리기(높이 7.9cm, 통일신라), 선암사 동삼층석탑 출토 은제도금팔각사 리기(높이 9.6cm, 고려말), 금강산 월출봉 출토의 이성계발원 은제도금팔 각사리기(높이 19.8cm, 1391년) 등이 있으며, 선산 도이사 세존부도에서 출토된 금동육각사리기(높이 17.0cm, 통일신라) 외면에 선각된 조각상이 광양 출토 사리기 외면 조각과 비슷한 모습이 많이 보인다. 전 광양 출토 팔각사리기는 높이 17.7cm이며, 통일신라시대인 8세기경 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3) 상백운암 목조삼존불감

이 목조불감은 상백운암에 원래 봉안되어 있었는데 현재는 동국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전체 높이가 28.3cm이며, 둥근 나무를 삼등분해 서 본존인 아미타불과 좌우로 관음과 지장보살을 부조한 삼존불형식의 불 감이다. 본존불은 상현좌 위에 결가부좌하였으며, 상호는 타원형에 가깝고 통견을 하고 있다. 좌우보살은 입상이며 지장은 손을 합장하고 있고 관음은 보관을 쓰고 있다. 대좌 밑을 원 통모양으로 뚫어 복장을 안치하였는데 복장기와 후령 통(높이 5cm, 지름 2cm)이 나왔다. 복장기는 푸른 명 주바탕에 붉은 글씨로 썼는데 다음과 같다. “崇禎十七 年八月日彌陀佛願尊像今旣畢□□□緣俱登覺岸者願 以此功德及一切我等與衆生皆共成佛道大施主□□□ 兩主金□□兩主□□□□□畵員英賢(贊?)”이 기문 에 의하면 1684년에 영현이란 사람이 조성하였으며, 모두가 불상을 만든 공덕으로 성불도를 이루기를 원하고 있다.

(4) 광양읍 덕례리 회암 출토 마제석검(도면)

이 석검은 회암 마을 앞 수로공사때에 2점이 발견되었으나 1점은 유실되 고 1점만 현재 서울대학교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석검의 형식은 유병식 이며, 전체적으로 형상만 타정(打整)하여 정연하지가 않다.(길이 33.0cm)
 

(5) 중마동 길호 출토 마제석기류(도면)

이 석기(石器)들은 1984년 8월 박종 현씨에 의해 매장문화재로 신고되어 현 재 국립광주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석 기는 석부(石斧) 1점, 석검(石劍) 1점, 석촉(돌화살촉) 2점 등 모두 4점이며 거 의 완형에 가깝다. 정학한 출토위치는 알 수 없고, 다만 유물을 신고할 때에 길호 마을 앞 해상 150m 지점에서 수습한 것 으로 전해지고 있다. 길호 마을 앞 바다 에는 내도와 날개섬이란 섬이 있는데 이 곳에서 선사유적이나 유물이 발견된 적 이 없다.
석부는 주상석부(舟狀石斧)로 날쪽이 넓고 머리쪽이 좁은 형식이다. 전 체적으로 타격을 가하여 형태를 만든 후 다듬은 흔적이 있으며, 부분적으로 갈았다(길이 29.4cm). 석검은 잘 갈아서 만든 점판암계 유경식석검이다. 이 석검은 몸통 중앙에 등날이 세워져 이지 않고 편평한 편육각형을 이루 고 있다. 경부쪽이 약간 벌어지면서 경부가 달려 있고 그 양쪽에 홈이 있는 유경유구식이다(길이 21.2cm). 석촉은 2점으로 1점은 봉부와 경부가 깨져 나갔고, 다른 1점은 완형이다. 형식은 길쭉한 유경시기며 단면이 마름모꼴 이고 경부 단면은 6각형이다(길이 11.5~13.5cm).
 

(6) 광양 지역의 발굴조사 출토 중요유물

광양시 지역에서 이루어진 고고학적 발굴조사는 옥곡면 원월리 지석묘 를 비롯해서 옥룡사지, 마로산성, 광양읍 용강리 택지개발 조성공사 지구와 용강초등학교 신축부지 등에서 이루어졌으며, 이 과정에서 많은 양의 유물 들이 출토되었다. 문화재보호법에 의하면 매장문화재는 그 소유가 국유이 다. 따라서 이 지역에서 이루어진 고고학적 조사에 의한 발굴유물들은 모두 국가 소유이기 때문에 이 지역의 중요 매장문화재는 대부분 국립광주박물 관에 소장되어 있다. 각 발굴지역마다 많은 양의 유물들이 출토되기 때문에 여기서는 간략히 그 개요만을 소개하고자 한다.

① 광양 원월리 지석묘 발굴조사 출토유물
원월리 지석묘군은 광양시 옥곡면 원월리 134-3번지에 자리하고 있으 며, 1990년 7월 2일부터 8월 25일까지 전남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조사가 이루어졌다. 조사결과 6기의 상석에서 5기의 석곽이 조사되었다. 유물은 석기류와 토기류가 수습되었다.
석기는 일단병식 석검과 석촉, 유구석부, 숫돌 등이 출토되었다. 1호 지석 묘에서 출토된 석검은 검신의 봉부쪽이 거의 절반 정도 유실된 상태로 출 토되었다. 날은 양쪽 모두 아래 끝부분에서 사용한 흔적이 보이고 있다. 토기는 무문토기, 공열토기, 홍도 등이 출토되었다. 3호 지석묘에서는 편 이지만 홍도편이 수습되었다. 구연은 약간 외반하고 있고 상당히 윗부분에 서부터 동체로 벌어지고 있는 기형으로서 원저에 가까운 말각평저로 추정 된다.

② 옥룡사지 1차 발굴조사 중요 출토유물
1차 발굴조사는 옥룡사지 비서거리에 대하여 1997년 1월 20일부터 3월 20일까지 순천대학교 박물관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이곳에서 선각국사 도선과 통진대사 경보의 부도전지가 아주 정연하게 노출되었으며, 많은 유물 들(신고유물 10건 109점)들이 출토되었다. 유물은 비편과 부도편이 주를 이루고 있다. 부도편은 도선과 경보의 부도가 깨지면서 수많은 편으로 흩어 져 출토되었고, 특이한 문양은 사천왕상, 용의 머리∙몸체∙발 등이다. 비 편은 통진대사의 비편으로 아주 작은 편으로 깨어진 채 출토되었고, 도선비 편은 1점도 없었다.
그리고 막새를 포함한 기와류가 출토되었다. 연화문 암막새는 막새면 중 앙에 만개한 복판의 연꽃이 있고, 좌우로 복판의 연화문이 대칭으로 표현되 어 있다. 당초문 암막새는 막새면 중앙으로부터 줄기가 뻗어나와 끝부분이 나선형으로 마무리되었다. 연화문수막새는 8엽 단판과 복판이 함께 출 토되었다. 편이지만 치미편도 수습되었다. 중심부에 굵은 돌대가 있고, 이 안쪽에 도두라지게 원형의 무늬가 있다. 바깥쪽에는 날개깃이 층단을 이루 고 있다.

③ 옥룡사지 2차 발굴조사 중요 출토유물
2차 발굴조사는 1997년 11월 5일부터 1998년 1월 22일까지 이루어졌 으며, 본격적인 옥룡사에 대한 발굴조사였다. 옥룡사지의 표토층을 제거한 조사였으며, 크게 3지구로 나누어 실시하였다. 대웅전 동편의 밭‘가’지구 에서는 조선시대 건물지와 관련유구들이 조사되었고, ‘나’지구에서는 정 면 3칸, 측면 2칸의 건물지가 조사되었으며, ‘다’지구에서는 2시기에 걸친 건물지가 확인되었다. 유물은 자기류와 기와류가 주를 이루고 있다(신고유 물 20건 20점).
기와류에서는‘成化十一年 丙申’,‘ 萬曆十七年 己丑’,‘ 卍’.‘ 松峙’銘의 명문와가 출토되었다. ‘成化十一年丙申’명 암막새는 막새면에 연화문과 귀목문이 함께 표현되어 있다. 수막새는 연화문∙귀목문 등 다양하다. 자기 류는 귀얄분청의 접시∙대접∙완 등이고, 백자접시도 출토되었다. 분청사 기의 굽은 대부분이 죽절굽을 이루고 있고, 모래섞인 내화토받침을 하고 있 다. 백자접시는 굽보다 넓은 내저원각이 돌아가고, 굽바닥과 내저면이 6~ 7개의 모래섞인 내화토받침을 하고 있다.

④ 옥룡사지 3차 발굴조사 중요 출토유물
3차 발굴조사는 1998년 12월 21일부터 1999년 2월 19일까지 이루어졌으며, 3개지역으로나누어실시하였다.‘ 가’지구에서는조선시대의건물지 2동이 확인되었고, ‘나’지구에서는 동-서로 가로지르는 석열유구가 확인 되었으며,‘ 다’지구에서는 적심과 초석은 일부 확인되나 건물의 정확한 규 모를 파악하기 힘든 유구가 조사되었다. 출토유물은 기와류와 자기류 등이 다(신고유물 14건 14점).
일부가 결실되었으나 기형이 복원되는 해무리굽 청자편이 수습되었으며, 용문 암막새가 완형급으로 출토되었다. 막새면에 용문이 사실적으로 묘사 되었고, 주연부에는 연주문이 양각되어 있다. 또한 오리모양의 잡상이 출토 되었는데 깃털을 표현하기 위해 음각선을 시문하였고, 머리와 꼬리부분은 탈락되었다. 특히‘다’지구에서 출토된‘雍正五年丁未…日玉龍寺…都監 潭’銘명문와는 문헌과 구전으로만 전해지던 옥룡사지를 출토유물로 직접 확인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⑤ 옥룡사지 4차 발굴조사 중요 출토유물
4차 발굴조사는 2001년 8월 7일부터 12월 4일까지 이루어졌으며, 조사 결과 조선시대 건물지 여러 동과 통일신라말~고려초의 연못터 1개소를 확인하였다. 여기에서 많은 자기류와 기와류가 출토되었다.
연못터에서는 구연부와 동체부가 일부 결실된 사면편병이 출토되었다. 저부는 평저이고, 동체부의 횡단면은 말각방형이다. 경부는 급격하게 좁아 지고 있다.
기와류는‘松川寺康熙二十一年壬戌五月日’,‘ 玉龍寺’,‘ 松峙’등의 명문 와와 막새류, 평기와류 등이 출토되었다. 통일신라시대 당초문 암막새는 당 초문이 대칭으로 비슷하나 부분적으로 다른 문양을 구성하고 있으며, 주연 부 없이 연주문이 표현되어 있다. 통일신라시대 연화문 수막새는 8엽복판 으로 자방부와 연판부, 주연부를 갖추고 있다. 조선시대 연화문 암막새는 연화문이 행인형의 변형문이고, 드림새 형태는 5엽으로 나뉘어진 역삼각 형이다. 조선시대 연화문 수막새는 8엽단판과 8엽의 세단판이 출토되고 있 다. 8엽세단판의 연화문 수막새는 연판부에 행인형의 소연판이 장식되었 고, 주연부는 양각선으로 구획되어 있으며, 연주문이 표현되어 있다. 분청사기는 접시가 주로 출토되었으며, 귀얄기법이나 덤벙기법, 인화기 법 등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백자는 잔과 접시가 출토되었다. 백자잔은 내저원각식으로 외측면은 저부에서 한번 꺾인 후 곡면을 이루며 구연부를 살짝 내만시켰다. 백자접시는 내저곡면식과 내저원각식이 함께 나타나고 있다.

⑥ 마로산성 1차 발굴조사 중요 출토유물
1차 발굴조사는 2001년 9월 18일부터 2002년 2월 26일까지 순천대학 교 박물관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조사결과 건물지 7동, 수혈유구 3기, 문지 1곳, 치 2개소 등의 유구와 기와류, 토기류, 철기류, 청동류 등의 다양한 유 물들이 조사되었다.
유물에 있어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馬老官’銘평기와로『三國史記』에 근거하면 광양지역은 백제시대부터 통일신라시대 중반기(8세기 중엽)까 지 馬老縣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治所의 명칭이 기와에 새겨져 문헌과 유물 이 부합됨을 알 수 있다. 더불어 공반되고 있는 토기류는 9세기대의 유물이 주를 이루고 있어‘馬老’라는 지명은 縣의 명칭이 馬老縣에서 晞陽縣으로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사용된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산성에서는 드물게 3점의 銅鏡이 출토되었다. 2점은 직경 16.5× 18.5cm 크기의 원형이고, 1점은 9×9cm 크기의 방형동경이다. 원형동경 가운데 1점은‘王家造鏡’이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어 주목되고, 방형동경인 해수포도경(海獸葡萄鏡)은 당나라의 전형적인 동경으로 거울의 뒷면에 포 도 또는 포도당초와 해수를 배치한 동경이다.
막새류는 10여 종이 출토되었다. 막새면에 시문된 문양이 이 지역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것으로 특이하다. 자방안에 4엽의 파형문이 있고 그 위에 당초문이 돌려진 것, 연화문이 4엽만 있는 형식, 자방안을 +字로 구 획한 후 주문을 배치한 것 등 기존에 볼 수 없었던 특이한 형식의 막새들 이다.

⑦ 마로산성 2차 발굴조사 중요 출토유물
2차 발굴조사는 2002년 10월 25일부터 2003년 1월 7일까지 이루어졌 으며, 1차 조사의 연속선상에서 이루어졌다. 조사결과 건물지 4동, 문지 1 곳, 집수정 4곳, 10여기 이상의 수혈유구 등이 추가로 조사되었다. 출토유 물은 1차 조사에서와 동일한 양상으로‘馬老官’銘평기와와 특이한 문양 의 막새류, 토기류, 자기류, 철기류 등이 출토되었다. 토기들은 대체로 동체 부에 돌대가 돌려진 대형호편이나 줄무늬토기편, 사각병, 편구병 등으로 주로 통일신라시대의 것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특히 수혈유구에서 확인된 사 각편병은 구연일부가 결실되었으나 완형에 가깝다. 기형은 동체부를 4면 으로 눌러 편평하게 만들었다. 또한 구연부 결실되었으나 완형급으로 한면 을 편평하게 만든 일면편병도 2점 수습되었다. 특히 2차 조사에서 철제솥이나 철제호등, 철부, 철제관, 철제보습, 용도미 상의 철기류의 완형급의 철기류가 수습되었다. Ⅱ-1건물지에서는 철제호 등 3점이 한꺼번에 출토되어 주목된다. 철제호등은 앞이 터지지 않은 주머 니형이다. 또한 농공구류 추정되는 철제따비, 철제보습 등이 완형으로 출토 되었다.
Ⅱ-1건물지 내에서는 우리나라 자기는 1점도 출토되지 않고 중국제 해 무리굽 청자∙백자편만 출토 되고 있어 주목된다. 해무리굽 청자편은 중국 의 월주요 계통의 것으로 추정되는데 인근의 광양 옥룡사지에서도 출토되 고 있다. 해무리굽 백자편은 완도 청해진유적을 제외하고는 전남지방에서 출토 예가 드물다. 이와 같은 중국제 자기류의 존재는 당시의 대외적인 관 계를 추정할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⑧ 마로산성 3차 발굴조사 중요 출토유물
3차 발굴조사는 2004년 5월 12일부터 2004년 8월 24일까지 이루어졌 으며, 조사결과 건물지 3동, 집수정 1곳, 우물 5개소, 수혈유구 2개소 등의 유구와 명문와∙수막새∙평기와 등의 기와류, 토기류, 철기류, 청동기류 등 의 다양한 유물들이 조사되어 산성연구 뿐만 아니라 당시의 생활상을 살필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될 것으로 판단된다.
3차 조사에서는 제사유구에서 토제마 및 청동마∙철제마가 다량으로 발 견되었다. 특히 토제마(204점)는 지금까지의 우리나라 발굴조사 사상 가 장 많은 양이 출토되어 주목된다. 기존에 토제마 출토유적은 당성, 이성산 성, 포천 반월산성, 천안 위례산성, 월성 해자, 양주 대모산성, 부안 죽막동 제사유적, 영암 월출산 제사유적 등이다. 한편, 청동마는 양주 대모산성, 익 산 미륵사지 등에서, 철제마는 이성산성, 거돈사지, 포천 반월산성, 부여 무 량사지 등지에서 출토되었다. 말(馬)은 神乘物이거나 영험적이고 신적인 존재, 또는 의리와 충성, 그리고 남성의 상징이고, 재앙을 예시해주는 존재 로 신앙적인 측면에서 이해되고 있다.
철기유물은 철제솥을 비롯한 생활유물, 철제 호등∙마탁(馬鐸) 등의 마구와의 관련품, 철제촉 등의 무기류 등 산성유적에서는 보기 드물게 다양한 유물들이 수습되어 철제유물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⑨ 광양읍 용강지구 1차 발굴조사 중요 출토유물
용강지구는 광양시 광양읍 용강리 525번지 일원으로 토지구획 정리조합 에서 시행한 택지개발 조성공사 지구로서 저평한 구릉의 하단부에 해당한 다. 1차 발굴조사는 1999년 12월 21일부터 2000년 3월 21일까지 순천대 학교 박물관에 의해 실시되었으며, 관동‘가’지구와 기두‘가’지구로 나누 어진다. 기두‘가’지구에서는 청동기시대 지석묘 4기 및 석곽묘 34기, 청동 기시대 주거지 8기, 수혈유구 3기, 삼국시대 주거지 1기, 통일신라시대 석 곽묘 2기 등의 유적이 확인되었다. 관동‘가’지구에서는 백제후기~통일신 라초기의 석곽묘 30기, 청동기시대 주거지 3기∙수혈유구 1기, 삼국시대 주거지 3기, 조선시대 민묘 5기 등이 조사되었다.
관동‘가’지구 4호 주거지에서 모자곡옥 1점이 출토되었다. 전체적으로 파손이 심한편으로 납석을 깎아 제작한 것으로 물고기모양을 띠고 있다. 곱 은 모옥의 등에는 원래 4개로 추정되나 현재는 3개의 자옥이 남아 있다. 이 러한 모자곡옥은 우리나라에서 출토된 예가 아주 빈약한 편이나 일본에서 는 5세기경 제사유적에서 많이 출토되고 있다.
관동‘가’지구 석곽묘에는 완형의 광구호∙대접∙단경호∙완∙개배∙ 합∙병 등이 출토되었다. 특히 22호 출토 환상병은 또아리 모양의 속이 빈 그릇에 주둥이를 붙인 것이다. 이 주둥이로 액체 등을 부어 사용할 수 있게 한 듯하다. 이같은 기형은 현재 용강리 출토품을 제외하고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과 서울 구이동 유적 출토품 2점이 더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⑩ 광양읍 용강지구 2차 발굴조사 중요 출토유물
2차 발굴조사는 2000년 10월 27일부터 2001년 4월 30일까지 이루어졌 으며, 1차 발굴조사와 동일하게 기두와 관동지구로 나누어 실시되었다. 관 동‘나’지구에서는 청동기~삼국시대의 주거지 128기∙수혈유구 12기∙ 고상가옥 4기, 백지~통일신라시대 석곽묘 7기∙구상유구 1기∙조선시대 민묘 48기 등이 확인되었다. 기두‘나’지구에서는 청동기시대 지석묘 4기 및 석곽묘 18기, 삼국시대의 주거지 48기와 수혈유구 6기 등이 확인되었다. 청동기시대의 유적에서는 마제석검, 마제석촉, 유구석부, 지석등의 석기류가 출토되었다. 마제석검은 일단병식 유경식 석검으로 검신의 단면은 마름모꼴이다. 마제석촉은 대다수가 유경식으로 촉신부의 단면은 마름모꼴 이고, 경부의 단면은 편육각형이며, 무경식의 삼각만입석촉도 출토되었다. 또한 천하석제 환옥과 관옥이 출토되었다. 주거지 유적에서는 장란형토기 를 비롯한 적갈색연질의 타날문토기와 회청색 경질의 토기가 출토되었다. 장란형토기는 일부가 결실되었으나 기형은 복원된다. 밑부분에서 벌어져 올라간 동체부는 상단에서 최대경을 갖은 후 내만하다 짧은 목을 형성한 다음 밖으로 벌어진 구연부를 형성하고 있다. 심발형토기도 대부분이 일부 가 결실되었으나 기형은 복원되는데 바닥은 평저이고, 외면에는 격자문 이 타날되어 있다. 회청색 경질의 노형고배는 반구형의 배신에 짧게 꺽이어 벌어진 구연부와 나팔상으로 벌어진 대각부를 갖고 있다. 또한 완형의 시루 가 확인되었는데 회청색 경질로 바닥은 평저이고, 중앙에 큰구멍을 뚫고 그 주위로 작은 구멍들이 한줄로 돌려져 있으며, 동중상단부에 우각형의 파수 가 부착되어 있다. 조선시대의 민묘에서는 귀얄분청의 대접∙접시 및 백자 접시∙대접이 출토되었고, 청동숫가락과 젓가락도 수습되었다.

⑪ 광양읍 용강리 기두 유적 출토유물
용강리 기두유적은 광양읍 용강리 607-1번지 일대에 있으며, 용강초등 학교 신축 때문에 조사를 실시하였다. 발굴조사는 2002년 4월 13일부터 6 월 5일까지 순천대학교박물관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조사결과 주거지 24 기, 수혈유구 5기, 구상유구 1기, 청동기시대 굴립주 2기, 삼국시대 석곽묘 1기, 노지 2기가 조사되었다. 유물은 석기류 및 토기류가 출토되었다(신고 유물 27건 30점). 석기류는 석촉, 석착, 유구석부, 석도, 망치돌, 연석, 숫돌 등이다. 석촉은 유경식과 세장한 유엽식의 석촉이 수습되었고, 숫돌은 기두 유적에서 가장 많은 수가 출토되었다. 대부분이 사암제이지만 크기와 형태 는 다양하다. 석부는 유구석부가 대다수를 차지하지만 일부 합인석부나 유 공석부도 출토되고 있다.
토기류는 청동기시대의 무문토기나 삼국시대의 적갈색연질타날문토기 및 회청색경질토기가 출토되었다. 청동기시대의 무문토기는 대다수가 편 으로 수습되었고, 삼국시대의 토기는 장란형토기, 주구토기, 파수부토기, 발형기대, 투창고배, 소형토기, 개, 호 등으로 다양하게 출토되었다. 특히 2 호 수혈에서 출토된 무개식고배의 경우 대각부에 화염문의 투창이 3개 확인되었다.

 

(7) 광양의 각 사찰에서 간행된 불서목판본

① 옥룡사의 달마대사혈맥론(達磨大師血脈論) 成化九年(1473) 朝鮮國全羅道光陽白雲山玉龍寺開板 목판본, 1책(13장) : 24.8 × 14.9cm, 四周單邊, 半郭: 8.4 × 12.8cm 無界, 11행19자, 上下白口, 上下內向黑魚尾, 연세대학교소장

② 송천사의 육조대사법보단경(六 祖大師法寶壇經) 康熙四十二年癸未(1703)八月日曹溪後學中華子太憲鎭板于松川寺 목판본, 1책(72장) : 27.7 × 18.4cm, 四周單邊, 半郭: 19 × 14.7cm 無界, 10행18자, 內向花紋魚尾, 성균관대∙동국대학교소장

③ 백운암의 金剛般若波羅蜜經 成化十年甲午(1474) 朝鮮國全羅道光陽地白雲山白雲寺開板 목판본, 2권2책 : 36 × 28.4cm, 四周單邊, 有界, 註雙行, 上下內向黑魚 尾, 연세대학교소장

④ 백운암의 서천불조종파전법지요(西天佛祖宗派傳法旨要) 成化十一年乙未(1475) 全羅道光陽地白雲山白雲庵重刊 목판본, 1책, 고려대∙동국대학교소장

⑤ 만수암의 석가여래행적송(釋迦如來行蹟頌) 嘉靖八年乙丑(1529) 全羅道光陽縣地白雲山萬壽庵開板 목판본, 1책 : 30.1 × 19.8cm, 四周單邊, 半郭: 21.1 × 15.4cm 無界, 13행, 上下白口, 上下內向黑魚尾, 고려대학교소장

⑥ 병풍암의 육조대사법보단경(六 祖大師法寶壇經) 成化十五年乙亥(1479)五月日白雲山屛風庵開板 목판본, 1책(67장) : 29.3 × 17.5cm, 四周單邊, 半郭: 29.3 × 17.5cm 無界, 註雙行, 10행17자, 內向黑魚尾, 국립중앙도서관∙성암도서관소장

⑦ 병풍암의 보제존자삼종가(普濟尊者三種歌) 成化十五年乙亥(1479)四月日白雲山屛風庵開板 목판본, 1책(23장) : 26 × 18.2cm, 註雙行, 8행14자, 성암도서관소장

⑧ 병풍암의 범강경로사나불설보살심지계품(梵綱經盧舍那佛說菩薩心地戒品) 康熙二十七年戊辰(1688) 夏全羅道光陽地白雲山屛風庵開板 목판본, 1책(82장) : 28.5 × 18.8cm, 四周單邊, 半郭: 17.2 × 16.6cm 有界, 8행17자, 內向二葉花紋魚尾, 연세대학교소장

⑨ 초천사의 함허당득통화상현정록(涵虛堂得通和尙顯正錄) 嘉靖五年丙戌(1526)七月日全羅道光陽地白雲山招川寺開板 목판본, 1책(20장) : 25.5 × 18cm, 四周單邊, 半郭: 21.2 × 15.5cm 有界, 11행20자, 內向黑魚尾, 동국대학교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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