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물유적

기타유적과 유물요지(窯址)

분류 : 기타유적과 유물

간략설명 : 요지(窯址) 1) 광양 골약동 기동 녹청자요지 이 요지는 기동마을 입구 일명‘자라바구’라고 하는 석조 거북이가 있는 앞 야산의 동쪽 하단부이다. 이 요지는 조그마한 밭을 경작하면서 야산의 하단을 굴착시켜 놓았기 때문에 그 단애면에 녹청자편과 가마의 벽편들이 노출되어있다. 녹청자의 편년은 인천 경서동요지와 해남 진산리요지와 비 견하여 참고하면 고려전반기(11

요지(窯址)

1) 광양 골약동 기동 녹청자요지

이 요지는 기동마을 입구 일명‘자라바구’라고 하는 석조 거북이가 있는 앞 야산의 동쪽 하단부이다. 이 요지는 조그마한 밭을 경작하면서 야산의 하단을 굴착시켜 놓았기 때문에 그 단애면에 녹청자편과 가마의 벽편들이 노출되어있다. 녹청자의 편년은 인천 경서동요지와 해남 진산리요지와 비 견하여 참고하면 고려전반기(11세기)로 추정된다. 그러나 황길동 기동마 을의 녹청자요지는 현재 수습된 녹청자편들로 볼 때 구연부의 기형이 외반 된 점이 심해서 조선 전기로 추정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녹청자 조사 자료를 볼 때 녹청자 편년은 고려시대로 추정하고 있기 때문에 정확 한 편년은 발굴조사 후에나 가능할 것이다. 녹청자란 도기에서 청자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초기청자라기보다는 11세 기 후반경 해안가의 조잡한 태토와 유약을 사용하여 만든 지방양식의 청자 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중국 동남 지방의 월주요계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청자로, 그 후에 철화∙철백화∙철채기법과 흑유 등을 사용해서 만드는 청 자요지군으로 발전해 간다. 이러한 점은 인천 경서동요지와 해남 진산리요 지의 발굴조사 결과로 알 수 있다.

2) 광양 골약동 정산 도요지Ⅰ

이 요지는 골약동 정산마을 동북쪽 안골이라는 골짜기에 위치한다. 현재 는 유씨 제각과 산지기 가옥이 들어서 있는데 현재는 요지의 형태를 전혀 알아볼 수 없으며, 자기편만이 이곳이 요지였음을 알려준다. 현재는 평탄하 게 돋우어져 전혀 알아볼 수 없는데, 마당 주변과 그 옆의 개간되어 경작하 는 밭에 도자기편이 많이 노출되어 있다. 한편 제각으로 올라가는 길 중앙 에 요지의 벽편으로 추정되는 소토편들이 곳곳에 박혀 있다. 발견된 도자편 의 종류는 대접∙바래기∙접시∙잔∙종 지기 등이다. 이곳에서 수습된 자 기편들은 전체적으로 기형이 투박하고 직선적이며, 유약이 회색조와 푸른 색을 띠고 있고 굽에 태토비짐눈을 받쳐 구운 흔적이 특징이다. 자기의 소 성 연대는 17세기대로 보인다.

3) 광양 골약동 정산 도요지Ⅱ

이 요지는 골약동 산 17에 해당한다. 가야산 국수봉의 골짜기에 위치한 이곳은 군장과 재동 마을쪽으로 들어가는 산업도로의 바로 아래쪽에 위치 하며 현재는 대나무 숲이 우거져 있다. 숲의 아래편에 집자리의 흔적이 있 는데 이곳에 집을 지을 때 많은 도자기편들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현재는 가마의 형태를 전혀 짐작할 수 없으며 백자편이 소량 수습될 뿐이다. 수습 된 백자편은 편이 작고 그 양도 미미해 기형과 그 특징을 살피는 것은 불가 능한 실정이나 대략 17세기 이후 사용되었던 요지로 추정할 수 있다. 요지 바로 앞으로 계곡물이 흐르고 있어 계속해서 유실되고 있다.

4) 광양 골약동 하포 요지

골약동 금곡마을에서 평촌마을로 가는 길을 따라 가다보면 평촌마을과 하포마을로 가는 두 갈래의 길 이 나온다. 여기서 하포마을로 가는 길로 접어들게 되 면 산업도로가 나온다. 이 도로에 바로 인접한 밭에서 부터 마을의 민가들이 보이기 시작하는 부분의 밭까 지 넓게 요지가 위치하고 있다. 동쪽으로 철도와 바로 인접해 있고, 북동쪽으로는 황길교회가 위치하고 있 으며, 동쪽으로 멀리 골약초등학교가 보인다. 남쪽으 로는 광양만이 펼쳐져 있다. 도로와 바로 인접한 곳에서부터 동쪽 논과 밭 에 도기편들이 산재해 있다. 일부 논이 계단식으로 되어 있어 논두렁단면에 토기편과 도기 편들이 박혀있다. 토기편들은 회청색경질토기가 수습되었 는데 대부분 큰 기형이며, 타날문이 시문되어 있다. 도기편들은 주로 병형 도기로 판단되며, 저부는 모두 평저이며, 일부는 시유되어 있는 것도 보인 다. 구연은 모두 외반된 구연을 가지고 있다. 수습유물로 보아 삼국시대부 터 고려시대에 걸친 요지로 판단된다.

5) 광양 골약동 황방 도요지

이 도요지는 황방마을 황금저수지 북서쪽의 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마 을 안쪽에서 황금저수지쪽으로 가는 농로를 따라 약 30분 정도 걸어 올라 가면 저수지에 이르게 된다. 도요지는 저수지와 북서쪽의 산이 만나는 부분 에 위치하고 있다. 북쪽으로는 구봉화산이 있고, 동쪽으로는 낮은 산들이 형성되어 있다. 남쪽으로는 논들이 펼쳐져 있다. 마을에서는‘황골저수 지 사그골’이라고 부르고 있다. 현재 자기편들이 사방 10m 정도의 범위에 깔려 있고, 요의 벽편과 소토 덩어리도 보이고 있다. 이 요지에서 출토되는 백자들은 일반적인 식생활 용기로 모두 무문인 대접, 접시 및 잔이다. 기형 은 접시나 대접의 대부분이 외반된 구연을 하고 있으며 기벽은 얇은 편이다.

6) 봉강 석사리 옥현 요지

순천에서 남해 고속도로를 따라 광양 방향으로 가다보면 오른쪽에 봉강 면 석사리 옥현마을이 나오는데 이곳 요지는옥현마을의 북동쪽에 위치하 고 있다. 요지는 남해고속도로를 확장하면서 절개되어 단면이 노출되어 있 고 주변에 토기편과 와편, 요벽편들이 산재해 있다. 토기편은 회청색 경질 토기편과 회색연질 토기편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와편은 선조문이 대부분 이다. 수습유물로 보아 토기와 기와를 함께 소성하던 백제시대의 요지로 판 단된다.

7) 옥곡 선유리 오류 도요지Ⅰ

옥곡면 소재지에서 남서쪽으로 국도를 따라가면 하선마을 못 미쳐 좌측 의 콘크리트 농로가 있는데 이 길을 따라 10분 정도 가면 옥곡면 선유리 오 류마을이 나온다. 도요지는 마을 남동쪽의 산길 주변에 2기가 250m 간격 을 두고 분포하고 있다. 도요지 Ⅰ은 마을에서 남동쪽으로 약 150m 떨어진 곳의 완만한 산경사면의 말단부인 길가 밤나무단지에 위치한다. 범위는 약 20m 정도로 추정되고 노출되어 있는 단면에는 도자편, 도침편 등 가마폐 기물이 1.5m 정도의 높이로 퇴적되어 있다. 이 요지에서 출토된 백자편은 일반적인 식생활 용기로 모두 무문인 대접, 접시 및 잔인데 대접이 대부분 을 차지한다. 기형은 접시나 대접의 대부분이 외반된 구연을 하고 있으며 기벽은 비교적 얇은 편에 속한다. 조선시대의 요지이다.

8) 옥곡 선유리 오류 도요지Ⅱ

옥곡면 선유리 도요지 Ⅰ에서 산길을 따라 윗쪽으로 250m 정도 떨어진 곳의 산경사면에 위치한다. 산길 주변에 도자편이 널려 있는데 확인할 수 있는 현 유적의 범위는 8×15m 정도이다. 그리고 노출되어 있는 퇴적층이 길 좌측에 위치하는데 주로 도자편, 도침 등의 가마폐기물이 약 1m 정도 높이로 퇴적되어 있다. 이 요지에서 출토된 백자편은 무문인 접시와 대접이 대부분이다. 구연의 형태는 외반된 것과 내만구연이 있으며, 내저에 원각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이 혼재되어 있다. 접시의 굽은 높은 것과 낮은 것으로 일 정하지 않다. 받침은 굽과 내저에 4~5개의 태토비짐받침이 사용되었으며, 소량 모래받침도 보인다. 작은 원반형의 경사진 도침이 출토되고 있으나, 초벌구이편과 내화갑은 발견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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